등록 : 2009.02.26 20:24
수정 : 2009.02.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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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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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사법부의 존재 이유인 기본적 인권과 헌법 질서의 수호를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사법권의 독립이다. 그러나 독재로 점철된 우리 사법 60년 역사에서 사법권의 독립은 상식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해야 할 가치였다.
신군부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물러난 이영섭 7대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오욕과 회한의 역사”라는 말을 남겼다. 사법부가 오욕과 회한의 역사를 거치면서 공포정치, 반공체제의 충실한 시녀이자 공범으로 전락하는 동안 우리 국민들은 폭압의 역사를 견뎌내야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는 독재를 종식시키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갖추었다. ‘사법파동’으로 대표되는 사법부 내부의 노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민주화의 과실로 사법부의 독립도 “주어졌다”. 그러나 그렇게 이뤄낸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것은 사상누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촛불시위 관련 사건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서 배당했을 뿐만 아니라 재판에까지 개입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권력이나 외부 세력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닌, 사법부 내부에 의한 사법권 침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사법부 내부에서 권력의 코드에 맞추려는 유혹과 이를 위해 사법권 독립마저 무시하는 태도로 말미암아 사법권 독립이 가장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적법하다, 관행이다”라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말을 바꾸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행태를 사법부마저 보여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우선 이번 사태에 대한 사법부의 반성과 인식 전환,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법관 양성 및 구성, 특히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과 민주적 정당성 확보가 필요하다. 명문대학 나와서 시험 잘 본 사람들이 법관이 되고, 그들이 엘리트 코스를 거쳐 대법관이 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법조인력 양성 체제를 바꾸기 위해 로스쿨이 출범했고, 사법 민주화의 여론에 따라 일부 개혁적으로 평가되는 인사가 대법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로스쿨 입학자가 법학 전공자, 남성, 서울 출신, 20대에 편중되어 있는데다 거액의 학비를 감당할 만한 경제적 능력까지 있어야 하니, 오히려 법조인력의 엘리트화 현상이 더 고착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리고 시스템에 의하지 않은 개혁적 인사의 대법관 임명은 코드인사라는 불필요한 비판을 초래할 수도 있다.
로스쿨 도입의 취지를 살리자면 여성, 지방 출신, 법학 비전공자, 비명문대 출신자, 사회적 소수자의 입학 비중을 대폭 높여야 한다. 그리고 교육과정도 변호사시험 대비 위주가 아니라 올바른 역사인식, 인권 감수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편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법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최소한 대법원장만큼은 국민투표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들에게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포부와 신념, 우리 사회의 법률적 쟁점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이에 대한 신임을 얻도록 해서 사법부가 국민과 유리되어 관료화·보수화되는 폐단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사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과 감시도 사법권 독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이런 개혁을 통해 사법권 독립을 이뤄야만 우리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류제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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