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5 22:14
수정 : 2009.03.0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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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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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과 미국의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이 맞서고 있다. 국무장관 인사 청문회 즈음해서는 양쪽이 원칙적 입장을 교환하는 첫 번째 신경전을 벌였다. 힐러리 내정자는 핵폐기가 핵심 목표임을 분명히하고, 어길 경우 추가 제재도 가능하다는 최대치의 대북 요구를 북에 보냈다. 북한 역시 북-미 관계 정상화와 미국의 핵위협 제거 없이는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최고조의 언급으로 맞받아쳤다.
두 번째 라운드는 북-미 두루 온건한 메시지를 교환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왕자루이 중국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비핵화를 위한 노력 강조와 함께 한반도 긴장고조를 원치 않는다는 유연한 신호를 보냈다. 미국 역시 북한의 비핵화 결단에는 다양한 당근으로 화답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두 차례 강온 입장을 교환한 북한과 미국은, 마침내 힐러리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을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전략적 계산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힐러리 장관은 북한이 손을 펴면 그 손에 북이 원하는 것들을 줄 수 있다며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곧이어 북한의 후계 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언급하는 과감한 전략을 구사했다. 국무부의 견해라고 공식 확인된 이 발언은 과연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아무도 시원스럽게 설명하지 못한 클린턴 장관의 발언은 사실 차후에 있을 북-미 협상의 구조를 전환시키려는 고차원의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부시 행정부 시기 북한 핵문제는 협상이 지연될수록 실패하게 되는 쪽은 미국이었다. 겉으로는 ‘핵포기 먼저’를 강조했지만 그로 말미암아 협상이 지연될 경우 북은 영변 원자로를 돌리면서 핵물질을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북핵문제는 구조가 조금 바뀌어 있다. 북한은 2·13 합의 이후 핵시설 동결에 이어 불능화에 나섰고, 이제는 협상이 지연되더라도 미국을 위협할 핵물질과 핵무기의 증대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클린턴 장관의 대북 후계 발언은 변화된 이 협상 구조를 북쪽에 정확히 인식시키려는 것이었다. 핵물질이 더는 늘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임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2·13 합의 이후 뒤바뀐 북핵문제의 구조를 정확히 간파하고 오히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북한의 협상 촉구용으로 활용하고 나선 것이다.
뒤바뀐 협상의 구조를 내세워 공세에 나선 미국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 역시 호락호락 당할 리가 없다. 수세에 몰린 김 위원장은 북-미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서둘러 미사일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히려 시간이 미국 편이 되어 버린 지금의 상황을 다시 한번 반전시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김 위원장은 미사일을 활용하고 나선 것이다. 핵물질은 증대되지 못하지만 진화된 미사일 기술이 과시 된다면 그 자체로 핵문제는 다른 양상이 되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이라 하더라도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발사체 기술은 동일하기에 미국에 책잡힐 미사일은 피해 가기로 했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를 통해 북-미 협상의 판을 한 번 더 복잡하게 만들 셈이다. 보즈워스 대북특사를 움직일 만큼 일단은 성공한 듯하다. 이쯤 되면 힐러리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의 수준 높은 두뇌싸움이 볼만하긴 하지만 그 경쟁이 한반도 평화를 볼모로 진행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북한도 미사일 카드를 버리고 미국 역시 시간끌기가 아니라 신속한 양자 협상에 나서야 한다. 두뇌싸움 대신 문제해결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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