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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16 21:31 수정 : 2009.04.16 21:31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연속기고] 다시보는 한-미 FTA ④

최근의 석면 문제는 ‘사전예방의 법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위험할 수 있다고 판명되면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미리 예방하는 원칙’ 말이다. 그런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런 ‘사전예방의 원칙’을 지키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협정이다.

미국의 에틸(Ethyl)사와 망간의 예를 살펴보자. 1997년 4월 캐나다 정부와 의회는 가솔린 첨가제로 망간을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 조처를 내렸다. 망간이 어린이들의 뇌나 신경 발달에 장애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망간이 첨가된 가솔린 첨가제를 팔고 있던 미국의 에틸사가 캐나다 정부를 곧바로 제소했다. 캐나다 법정에 제소한 것이 아니라 북미 자유무역협정에 의거, 국제중재재판을 신청한 것이다. 제소만 한 것이 아니다. 입법이 이루어지기 6개월 전부터 입법을 막기 위해 제소한다는 협박을 했다. 그리고 결국 에틸사와의 국제중재재판 결과 캐나다 정부가 패소했다. 망간 금지 조처는 폐기되었고 캐나다 정부는 1998년 1300만달러의 배상금을 물어주기까지 해야 했다. 지금까지도 캐나다는 그 위험을 알면서도 망간에 대한 금지 조처가 없다. 한 나라의 주체적인 보건과 건강, 환경 정책이 자유무역협정으로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전예방의 법칙을 무시하여 재앙적 결과를 낳은 물질들은 최근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석면만이 아니다. 베트남전쟁에 다량 사용됐으며 2세대까지 병을 대물림시키는 고엽제나 광우병의 원인이 된 동물성 사료 등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무시했던 정부로 인해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이 위험에 처하게 된 예들이다. 그리고 이런 금지되지 않은 위험 물질은 여전히 너무 많다. 그런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도입되면 ‘확고한 증거’ 없이 위험 물질을 금지하는 것은 투자자 제소제에 의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확고한 증거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떼로 죽어나가는 그런 증거. 그러나 석면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가 된다.

더 큰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병에 걸린 후 치료할 의약품 가격도 폭등시킨다는 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이후 정부가 결정하였던 공공약가 제도가 의약품의 ‘혁신성’에 따라 시장가격(F1), 정부결정가격(F2)의 이원적 가격 제도로 바뀌었다. 심지어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요구한 오바마 정부도 의료개혁 플랜의 하나로 노인건강보험의 의약품 가격을 정부가 결정하도록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거대 제약회사가 약값을 결정하게 됨에 따라 노인건강보험의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이런 미국의 고가 약가 제도를 고스란히 한국에 이식시키겠다는 협정이다.

이뿐이 아니다.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서는 공적 자동차보험을 도입하겠다던 주정부의 계획이 보험회사들의 투자자 정부 제소 협박에 의해 무산되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보장 범위를 확대하려 하면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기업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모든 공공정책이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훼손된다. 경제위기 시기에 기업의 이익을 제한하는 공공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면 국민을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석면은 매우 위험한 발암물질이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제2의 석면을 막지 못하게 할, 한국의 공공정책 전체를 뒤흔드는 협정이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중단돼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석면보다 100배, 1000배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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