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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15 22:10 수정 : 2009.07.15 22:10

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남한강물에 뗏목을 띄웠다. 30여년 전 여름, 친구들과 함께였다. 충주에 댐이 생기기 전, 단양 구담봉이 하늘을 찌르고, 청풍 옛 고을 정자에 명월이 가득하던 그 시절이었다. 여주 신륵사 건너편 가없는 백사장 모래톱에서 뗏목을 얽었다. 서양 인류학자가 만든 “콘티키” 뗏목 사진을 보았다. 통나무를 3단으로 쌓아 그 위에 천막을 친 장한 모습이었다. 그런 뗏목을 만들어 그 위에서 자고 먹고 흘러내려 오면 멋질 것 같았다.

여주대교 밑을 지나 유유하게 떠내려가던 뗏목은 읍내를 벗어난 하구 모래톱 위에 바로 얹혀 버렸다. 우리가 늘 보던 ‘한강’은 거기까지였다. 거기부터는 제일 깊은 곳이라야 굵은 나무 한 통 겨우 빠질 정도의 얕은 물이 넓게 퍼져 흐르는 모래와 자갈밭이었다. “다~ 끊어!” 마을 어른의 말씀에 야무지게 묶은 뗏목을 풀어 헤치며 아까워 눈물이 났다. 나무들을 끌어모아 다시 엮어 보니 바로 두만강 푸른 물에 길게 줄지어 흘러가던 옛날 사진 속의 우리식 뗏목이 되었다. 누워서 자기는커녕 발목까지 물에 잠그고 거듭 다가오는 여울물 소리에 숨죽이며 바삐 노를 저었다.

남한강의 하류인 여주에서 양평 사이의 짧은 구간에도 그렇게 거친 여울들이 열 곳이 넘었다. 그동안 많이 상하기는 했어도 도시와 도시 사이, 마을과 마을 사이의 기나긴 강줄기는 여전히 모래와 자갈로 덮여 있고 수초와 갈대가 우거져 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여울목에서는 지금도 급류가 돌을 굴려 자갈과 모래와 개흙을 만들고 있고, 그 틈새를 빠르게 지나며 오염된 물들이 새로 태어나고 있다. “4대강 살리기”는 바로 이런 강바닥을 긁어내서 막힌 곳을 통하게 하겠다고 한다.

수천 수만년 흐르고 흘러 자연이 만들어 놓은 “헌강”에 22조원을 들여 3년 안에 “새강”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잠깐! 대체 무엇을 주면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골동품 놋쇠주발을 웃돈 얹어서 양은냄비로 바꾸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 그보다도 모래, 자갈, 수초로 된 두껍고 넓은 자연 정수필터를 답답하다고 확! 뚫어 구멍 내서 빨리 물을 내리겠다는 것은 아닌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4대강을 ‘사기’ 전에, 낡은 4대강을 ‘팔기’ 전에, 우리 강을 제대로 ‘알기’ 위해 모두 그 강가로 한번 나가 보아야겠다. 그동안 무심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강물, 그 강가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바위, 돌, 절벽, 모래톱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와 전설, 수천년 사람들의 삶의 자취와 수만년 자연의 나이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그 모든 것을 갈아엎는다고 한다. 한 굽이 한 굽이 강어귀마다 수백, 수천억원씩 들여 반듯한 콘크리트 제방과 널찍한 풀밭과 포장된 자전거길도 만든다고 한다.

올해 안에 4대강 ‘살리기’ 공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시간이 없다. 바로 이번 여름 방학과 휴가철에 그 강변에 나가 보기 바란다. 늘 보던 도시와 마을 앞의 고여 있는 강물만 볼 것이 아니라, 인적 드문 강가를 걸어 보고 또 흘러 보기 바란다. 여울목 어귀에 앉아 지금도 자갈을 굴리며 흐르고 있을 빠른 물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 바란다. 아련한 모래톱 사이로 오가는 철새들과 무수한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의 고동을 느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들 눈앞에서 사라져 가려고 하는 수천, 수만년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사진으로 글로 기록해 두기 바란다. 우리 세대가 저지르려고 하는 이 끔찍한 만행을 다음 세대에 증언하기 위하여, 이미 그 큰 무쇠팔로 여기저기 파헤치고 긁어대기 시작한 포클레인과 트럭의 무자비한 행렬을 우리들 맨몸으로 막아서기 위하여….

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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