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20 22:04
수정 : 2009.07.2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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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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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공자에게 제자 자공이 ‘정치의 요체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무기와 식량 그리고 믿음’ 세 가지를 꼽았다. 자공이 이어서 ‘그 가운데 한 가지를 부득이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먼저 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자공이 다시 ‘남은 두 가지 중 또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하라’고 대답했다.
정치의 요체는 믿음이며, 그것이 바로 나라의 근본 중의 근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공자의 가르침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첫 단추를 끼울 때부터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국민의 믿음에 깊은 상처를 냈다. 그 뒤 연이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미네르바’ 구속, 용산 철거민 강제진압, 노무현 전 대통령 강압수사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산산조각 내기에 이르렀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수세에 몰린 이명박 정권은 이른바 ‘현장정치’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 정국을 반전시킬 요량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뢰는 상대의 진정성을 읽었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저번 촛불정국 때는 시장에 가서 목도리 사서 매고 배추 몇 포기 사주는 사진을 찍고 하더니, 이번 서거정국에서는 시장에 가서 뻥튀기와 어묵 사먹는 연출을 한다. 하지만 이는 시장상인들, 노동자들, 농어민들이 견뎌내기 어려운 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시도일 뿐이다.
그것이 다 쇼라는 것을 웬만한 민초들도 눈치챈 지 이미 오래다. 시장 상인들이 대통령에게 이구동성으로 대기업들의 대형마트 때문에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하소연하자, 대통령은 ‘그래도 지금은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자신이 노점상 하던 박정희 시절보다는 세상이 좋아졌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동문서답에 시장 상인들은 절망했을 것이다.
입으로는 민생을 챙기겠다고 하면서 손으로는 민생을 팽개치는 정책이 바로 도시재개발이요, 비정규직법 유예요, 한-미,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신뢰의 상실로 위기를 느낀 정권은 공안통치, 강권통치의 유혹에 빠졌다. 이미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경제 발전도 이룩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에도, 과거 군사정권 때처럼 경제지상주의를 내세워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
촛불시위자 처벌, <문화방송> 피디 처벌, 미네르바 처벌, 시국선언 교사 처벌 등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광경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법치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인권을 담당하는 기관을 마치 파산위기에 몰린 기업처럼 구조조정하고, 공안검사를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질서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모습에서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또한 출범 초부터 촛불의 뜨거운 맛(?)을 본 이명박 정권은 방송 채널을 보수 족벌신문과 재벌들에 넘겨주기 위해 지금 언론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할 태세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언론법 개정에 정부·여당이 이토록 매달리는 까닭은 아마도 촛불시위가 광우병 쇠고기 문제를 심층 보도한 특정 방송 때문에 촉발되었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던 촛불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해야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정부·여당이 오판하여 언론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한다면, 국민의 신뢰 상실을 넘어 강력한 저항을 받을 것이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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