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28 22:02
수정 : 2009.07.2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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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태 전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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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독일식 양원제 도입을 포함한 중앙-지방간 수직적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은 문제의식이고 정치발전 비전을 던졌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사실 한국 정치의 중앙집권성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참으로 시대역행적이다. 그럼에도 개헌 논의가 중앙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을 둘러싼 논쟁이다. 하지만 중앙집권제의 틀을 그대로 두고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바꾸자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 될지 모른다. 되레 더 큰 정치적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의 지방 통제를 더욱 강화시킬 ‘지방행정체제 개편론’도 마찬가지다.
중앙집권제하에서는 대통령직을 장악하는 게 지역정당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지역 주민들의 ‘묻지마 투표’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앙권력의 입맛에 따라 주무르는 재정배분 시스템에서는 중앙 인맥을 총동원해 장관·청와대를 상대로 구걸 읍소해 예산을 따오는 게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다. 이런 까닭에 국가자원이 복지·교육·의료 등 사회개발보다는 지역개발 중심으로 나눠지는 형국이다. 중앙의 권력집중은 정책결정권의 중앙 집중을 뜻하는데 국정능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이게 중앙 권력집중의 패러독스이다. 대통령을 축으로 한 중앙집권제의 틀이 유지되는 한, 한국 정치의 양극화,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깨고자 하는 백약이 무효가 될 것이다.
따라서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화를 제안한다. ‘수직적 권력분점’의 제도화이다. 중앙이 결정권과 돈을 틀어쥐고 있는 구도를 걷어내는 헌법적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외교·국방·통일·국책사업 등을 중심으로 국가통합과 조정 업무를 맡고, 그 밖의 행정·재정·교육·경찰 등에 관한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기는 권력분점 프레임에 대한 국가적 성찰을 할 때가 됐다.
독일에서는 중앙의 정책결정과 재정운영에 소수 지역의 균등한 협상기회 시스템이 정교하게 마련돼 있다. 국민 대표성은 하원에, 지역 대표성은 상원에 맡기는 양원제로 개헌이 될 때 그 가능성이 열린다. 그리고 지방의회에 자치입법권을 허용하는 입법권의 분점, 특히 조세(세율과 세목) 법률주의를 청산하고 이를 자치단체에 맡기는 것도 섬세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은 벌써 이런 헌법 트랙을 밟았다. 글로벌 트렌드다. 중앙정치의 과부하를 막고 지역발전과 생활정치를 위해서다.
이러한 국가시스템은 지역발전 여부를 중앙정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 책임” 지기 때문에 지역갈등 정치를 줄일 수 있다. 지역간 정책경쟁을 통해 국가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나아가 통일의 충격을 흡수하는 준비 작업이다. 통독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것이 아니라, 독일연방공화국에 동독의 주들이 가입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통일 과정에서 남북 지역갈등을 관리하는 처방이 될 수 있으리라.
홍수를 막으려면 샛강 손질 수준이 아니라 큰 강의 물줄기를 바꿔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은 시대정신을 올바르게 판독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을 투영한 국가의 틀을 창출하는 리더십이다. 준연방제적 지방분권화에 기초한 국가시스템이야말로 국민과 민족을 감동시킬 매력적인 ‘포스트민주화 헌정패러다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선학태 전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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