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2 18:57
수정 : 2009.08.0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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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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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일 광화문 광장이 1년3개월의 공사 끝에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조선 건국의 상징 공간이자 대궐로 직통하는 어가(御街)의 육조대로였던 세종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행정중심지로 시민들에게는 오랫동안 위엄과 권위의 공간으로 각인되었다. 탁 트인 도성 제일의 도로라고 자랑하기에는 세종로는 시민들에게 너무 불편하고 진부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광화문 세종로 일대가 딱 한번 시민들의 카니발 공간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 거리응원에서이다. 한국과 폴란드의 예선 1차전을 거리에서 응원하기 위해 세종로에 모인 수십만명의 인파는 거리와 광장이 시민들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월드컵이 열린 한 달 동안 세종로 일대는 환희와 유쾌함이 공존하는 카니발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짧은 축제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을까, 광화문 광장의 꿈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시민단체인 문화연대는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직후 광화문 세종로 일대를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캠페인을 벌였고, 세종로 일대를 수도의 심장부에 걸맞게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참신한 대안을 제시했다. ‘세종로 역사문화공간 만들기’ 캠페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간을 시민들에게 열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랜 논의 끝에 지금 우리 앞에 선을 보인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체현할 수 있는 공간인지 의심스럽다. 이순신 장군의 23전 전승의 신화를 상징한다는 300여개의 인공분수 노즐, 서울의 상징인 해치 동상, 광장 가장자리의 역사물길, 그리고 축구장 절반 크기의 플라워 카펫 등 광화문 광장을 수놓은 것은 오로지 인공 조형물들이다. 광장의 친근함을 위해 부분적인 조경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지금 광장은 전통도 역사도 문화도 없이 인공 조형물이 지배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테마파크 같다. 광화문 광장에 응용된 역사는 단지 죽은 기념물에 불과할 뿐이다.
더욱이 광화문 광장 사용을 위한 서울시의 조례 제정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집회를 원천으로 봉쇄하는 엄격한 사용규정이 적용된데다, 광장을 쓰려면 만만치 않은 사용료를 내야 한다. 조례에 명시된 ‘공공질서’, ‘안전 확보’, ‘질서 유지’라는 사용 조건들은 사실 몸의 난장과 다성의 목소리를 원칙으로 하는 광장의 의미와 배치된다. 광장을 만든 사람들은 역으로 광장의 본래 의미를 거세하려는 이상한 ‘카니발 공포증’에 걸려 있다. 현재 광화문 광장의 모습은 잘 치장한 조경 공간, 혹은 ‘열린 음악회’를 기다리는 관제 이벤트 공간 같아 보인다.
전세계 어느 나라의 유서 깊은 광장도 이런 식으로 공간을 규격화하고 박제화하지 않는다. 광장은 비어 있는 곳이며, 비어 있는 만큼 시민들의 자발적 열정이 채워지는 곳이다. 광장은 서로 다른 정치적, 문화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고 논쟁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유쾌한 상대성’을 표현하는 일종의 카니발의 공간이어야 한다.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었던 7년 전 월드컵 거리문화를 상상해 보라. 당시 거리의 화려한 스타일은 서울시가 계획한 게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 우발적으로 창조된 것이다. 역사적 의미를 계량화하고 문화적 기억을 거세하려는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의 창조적 열정이 발산될지 의문이다. 유서 깊은 트래펄가, 마르세유, 카탈루냐 광장의 역사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연스러운 접근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광장은 테마파크가 아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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