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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04 21:33 수정 : 2009.08.04 21:33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보면서 우리는 대의제를 의심했다. 그리고 다시 국민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되는 미디어법 개정을 보면서, 그리고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검찰이 우리의 여론과 기본권을 동시에 무시하며 미네르바, 피디수첩 제작진, 언론소비자운동가들을 기소하는 것을 보며 그 의심은 더욱 커져 왔다. 대의제는 헌법의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헌’은 그 말만 여당에서 먼저 꺼냈을 뿐 국민들은 작년부터 속으로 되뇌어 왔다.

개헌은 국민주권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와 다수결로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 보호 사이의 균형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하에서는 양쪽 다 위기에 처해 있다. 우선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기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다수의 반대도 거스를 수 있지만 위 사업들 모두 장담할 수 없는 경제효과를 위해 추진되고 있고, 오히려 이 정책들을 비판하는 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검찰을 포함한 행정권력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결국 행정권력의 일부를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가가 현재 개헌안의 평가기준이 되어야 한다.

의원내각제도 이 측면에서 평가되고 조정되지 않으면 국민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정치인들 간의 나눠 먹기’가 된다. 의원내각제는 의회 다수당의 리더가 동료 의원들의 신임하에 행정부 수반이 되는 것인데, 이 신임은 지역구 민심에 따라 언제라도 거두어질 수 있으므로 총리는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의원내각제하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추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촛불시위로 정부·여당이 궁지에 몰렸을 때 적어도 한나라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어렵게 할 수도 있는 가축위생법 개정 논의에 열린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거꾸로 의원내각제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합친 것이며 권력집중의 폐해는 더욱 클 수 있다. 즉 당내 민주화가 보장되지 않는 의원내각제는 하나 마나 한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 시도 때와 같이 당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병정처럼 움직이는 투표행태를 근절하지 못하는 한 의원내각제는 의미가 없다.

대통령연임제 역시 연임의 가능성 때문에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에는 민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심에 민감한 행정부 수반을 창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민심이 직접 힘을 발휘하는 국민발의안제도를 제안한다. 직전 선거 유효투표수의 2∼5%의 유권자가 발의하여 원하는 법률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이 제도하에서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 문제는 물론 로스쿨 총정원 증원, 징벌적 손해배상 등 대다수 국민들이 그토록 원하지만 대의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사안이 민의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폐해’는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활발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화된다. 다수독재는 대의제나 직접민주주의에서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 오히려 ‘사람’을 두고 다수결로 투표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나중에 무슨 일을 할지 모르니 구체적인 법안에 대해 다수결로 투표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지 않은가.

검경 개혁안으로 제기되는 상설특검, 지방검찰청장 직선제와 자치경찰제도 국민주권의 원칙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검찰권과 경찰권 모두 독립성을 부여해도 행정부 수반에 봉사하느라 여론과 기본권을 무시한다면, 그 권한을 분산하여 그 일부를 국민과 더 가까운 입법부 산하에 두거나 국민이 그 권한을 직접 감시하고 평가하자는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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