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9 20:23
수정 : 2009.08.09 20:23
|
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
딸 하나 있는 게 공부가 별로라던 선배가 표정이 밝더니 좋은 대학에 붙었단다. 그 아빠 설명, 얘가 좀 똑똑한 인상이야, 또 말을 잘해요, 모르는 사람 보기에 좀 있어 보이지. 면접에서 점수를 좀 벌충했다나. 버벅대고 끝을 흐리는 말투의 딸과 눈에 힘 좀 주고 다녔으면 하는 아들을 둔 나로서는 듣기 착잡했다. 이제라도 웅변학원을 보내? 인생의 쓴맛을 안겨줘 눈에 힘들어가게 해?
입학사정관제가 대통령 말대로 “시험 없이 면담만으로 대학 가는” 거라면 그 좀 길어진 면접에서는 같은 계급끼리 통하는 문화자본, 무엇보다 언어구사력과 바른 품행이 일차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그다음, 면담으로 무엇을 보느냐, 이른바 ‘잠재력’을 본다. 이 잠재력이라는 것이 근래 각광받는 입학사정관제의 열쇳말이고 지배가치이다.
지금 비록 미천하나 결과가 창대할 것을 예상하여 인재를 발탁한다, 이게 잠재력이다. 미래가치의 예상이고 막연한 것의 적극 평가이며 그 전망이 틀린 걸로 판명날 수도 있다. 그것의 반대는? 현재의 힘, 현재의 객관화된 활동과 성취이다. 입학사정관제는 내신을 무력화시키는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진일보한 내신 무력화 방법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를 정시라는 패자부활전에서나 필요한 것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즉 잠재력이라는 이름으로 수년간 뼛골 빠지게 마련한 지금의 점수, 지금의 성과를 헛짓으로 돌리는 것이다.
아직 구현되지 않고 숨은 그 어떤 수학능력과 적성을 어떻게 잴까? 우리만큼 사람을 못 믿고 담당자 재량권을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논란과 잡음이 얼마나 많을지 불 보듯 뻔하다. 하여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하게 실시한다는 취지로 (어디 있다 갑자기 무리지어 튀어나오는 덕망 있는 이들인지 모르겠으나) 사정관들의 주관성이 개입하지 못하게 객관화된 지표가 마련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간단하게 면담이라 한 것이 대학에서는 갖가지 전형조건이 될 수밖에. 영어점수와 각종 입상실적이 들어간 활동 포트폴리오, 보통 부모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야코죽을’ 거창한 요건들로 잠재력은 바야흐로 객관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제 죽어라 공부만 했어요가 아니라 되도록 궁벽한 오지에 내려가 ‘계몽활동’ 한 비디오 자료 있고요, 교수 아빠랑 같이 영어 원서 (아이는 상징적으로만) 번역출판 했고요, 외국 유명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증서 있어요, 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증거를 남기라!) 외국에도 시골에도 별 연고 없고, 애와 같이 무슨 활동을 할 만한 문화자본도 시원치 않고(무엇보다 시간이 없고), 수백만원의 컨설팅 비용도 없는 이는 어떻게 하나.
잠재력 검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잰다는 야심인데 실패할 가능성은 많으면서 그 결과 판정은 잔인하다. 시험으로 판단하면 너 실패했어는 너 이번 시험 떨어졌어 다음엔 붙을지 모르지만, 잠재력을 갖고 그러면 너 떨어졌어 잠재력을 어떻게 일거에 기르겠니 국으로 살아라는 말이다. 작년에 날 떨어뜨린 사정관이 올해 나를 붙일까? 법관을 꿈꿨는데 법학적성검사에서 떨어지면 얼마나 막막할까. 잠재력은 특정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판단하고 인간을 우등과 열등으로 분류한다.
단순 암기문제 시험 봐 소수점 몇 자리까지 등수 매겨 선발하는 것에 대한 염증과 그 널리 인지된 비합리를 타고 그 대척점인 양 입학사정관제가 떠오르는 것은 일견 이해된다. 그러나 그것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훨씬 강화된 계급적 선발방식일 뿐이다. 기여입학제는 그 소소한 부산물이다. 그 계급편향성을 극복할 방도를 모색하며 시험적으로 시행할 일이다.
김미영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