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09 22:26
수정 : 2009.11.09 22:26
|
안문석 한서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북한의 핵 위협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플루토늄의 무기화를 계속하고 있음을 재차 밝혔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이 올해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식은 그나마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북-미 간의 경색은 풀리는 양상인 반면에 남북 간의 냉기류는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지난 9월 초 북한의 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협의 제안을 우리 정부가 묵살했다는 보도(<한겨레> 11월7일치)는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북한이 현대아산 쪽에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 협의를 하자고 했는데, 정부는 당국 간 협의가 필요하다며 현대아산 쪽에 협의에 나서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제의를 당국 간 대화의 단서로 활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북한은 얼마 전 남한과의 정상회담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일관성 있게’ 소극적이다. 이제 ‘기다리기 전략’을 넘어서 이를테면 ‘버티기 전략’이라고 할 만하다.
‘북한이 아쉬워서 덤비니까 좀 더 튕겨보자’는 것이 정부의 심산인 것 같다. 외교에서 꼭 필요한 융통성은 보이지 않고, 나름의 틀을 정해놓고 그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무시한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저변에는 언젠가는 북한이 고개를 숙이고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인 것 같다.
남한의 지원이 끊기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더 강화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까지 들어가 경제협력 강화를 약속했고, 후진타오 주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국으로 초청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남북 간의 교역이 줄면 북-중 간의 교역은 증가한다. 게다가 중국은 동북지역 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서 신의주를 중심으로 한 북한과의 협력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 제안도 뭐가 당장 아쉬워서라기보다는 ‘2012년 강성대국’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남한과의 관계 개선 추진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버티기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우리 편이어야 한다. 한데 그런가. 아니다. 북한은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상당량의 핵무기를 확보한 북한이라면 다루기는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핵 문제는 미국과 얘기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긴 하지만, 남한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길은 대화와 교류를 확대하는 것 외에 없을 것이다. 북한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자존심’이다. 수시로 ‘자주’를 강조하고, 소련·중국의 통치 이념과 구분되는 주체사상을 만들어 낸 것도 ‘자존심’ 때문이다. 대화 제의에 메아리가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대수롭지 않은 것인가. 당장 한반도의 위기지수가 높아짐은 말할 것도 없고, 대화의 기회 상실에 따른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이는 실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시저)가 대립할 때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세력만 믿고 갈등 해결을 위한 양자회담을 거절했다. 결과는 내전이었고, 폼페이우스는 패해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다. 맹자는 전쟁에 이기려면 우선 시기를 잘 택해야 한다고 했지만 대화에도 때가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안문석 한서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