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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23 20:04 수정 : 2009.11.23 20:04

송민순 민주당 의원·전 외교통상부 장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필자는 분단 독일의 최전선이자 동서냉전의 상징이던 서베를린 주재 한국 부영사로 독일과 한국의 분단 현실을 곱씹으면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독일은 주변국들의 강력한 견제를 넘어 통일을 이룩하였다. 통일독일은 ‘유럽의 안정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면서, 지금 하나로 뭉치는 유럽통합의 중심에 서 있다.

30년 전 세계인들은 독일의 통일을 한국의 통일보다 훨씬 요원하게 보았다. 미·소·영·프 네 나라가 모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런 독일 통일이 우리보다 빨리 이뤄진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은 통일을 외치기보다 실천을 하였고 우리는 그 반대로 갔다. 소련 체제의 와해라는 외적 요인도 있었지만, 독일인들은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에 두고 일관된 통일정책을 추진하였다.

1982년 13년 만에 사민당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은 기민당의 콜 총리는 취임 후 첫 의회연설에서 “지금까지 동독과 체결한 협정을 존중하고 진행중인 협상도 계속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전임자였던 사민당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계속 발전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8년 후 그는 독일을 통일시킨 총리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때마침 우리 내부에서도 대북정책과 관련한 남남갈등을 극복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지난 금요일 부산에서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주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도 “대북정책의 초당적 협력”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 참석자들은 우리 대북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든 그것이 힘을 얻으려면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일종의 ‘국민대협약’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였다.

어떤 정책이든 한쪽에 치우친 선택은 늘 국론 분열을 가져온다. ‘국민대협약’의 성립을 위해서는 도덕적 관점에서 대북 압박만을 주장하는 강경 대결론이나 북한과의 어떤 협력도 무조건 좋다고 보는 맹목적 접근론이 모두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내부 갈등은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잃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되어 왔다. 중요한 것은 남남갈등이 깊어지고 남북간에 ‘칼자루’ 싸움을 하는 사이, 한반도의 정세는 남북의 궤도가 아니라 주변국들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맞추어 돌아간다는 것이다. ‘칼자루’가 있다면 실패한 체제인 북한이 아니라 성공한 우리가 당연히 쥐어야 할 것이다.

‘국민대협약’의 근간은 냉전 종식 이래 남북이 체결한 3대 합의인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정상선언의 핵심 공통사항을 중심으로 남북관계를 우리가 이끌어 가자는 것이다. 평화공존, 핵을 포함한 정치군사협상,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협력사업, 인도적 문제와 사회문화 교류를 남쪽이 먼저 자신 있게 실천하고, 북쪽의 상응조처를 엄중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이 3대 합의는 각각 다른 정권에서 이루어졌지만 상호 모순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맥락을 같이한다. 남쪽이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이는데도 북쪽이 의무사항을 지연 또는 위반한다면, 국민대협약에 기초해서 단호한 조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일 독일 국민들은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장소에서 도미노 1000개를 넘어뜨리면서 장벽 붕괴를 기념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의 과정은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통일정책을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추진하면서 주변국을 설득하는 주도력을 발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국민대협약 논의가 성공적인 통일정책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송민순 민주당 의원·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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