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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09 20:35 수정 : 2010.11.09 20:35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전 국회의원


지난 5일 국회의원 11명의 사무실을 검찰이 동시에 압수수색해 정국이 얼어붙고야 말았다. 예·결산과 산적한 민생법안을 다뤄야 할 정기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정난’(政難)이란 말을 떠올려 본다. 이내 나는 머리를 도리질했다. 문민시대인데 어찌 군부독재 시절의 시사용어인 법난(法難)과 같은 말을 쓸 수가 있겠는가.

지난달 불교계는 10·27 법난 30돌 행사를 열었다. 전두환 신군부 집단이 조계종 승려 153명을 강제연행하고 전국의 사찰 5731곳에 경찰과 군인을 투입해 2000여명을 체포한 사건이다. 송월주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도 끌려가 죄수복 차림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는 끝내 총무원장직에서 사퇴해야 했다. 불교계 정화라는 이름 아래 많은 스님들이 삼청교육대까지 끌려가기도 했다. 월주 총무원장이 전두환 지지 성명에 반대했기 때문에 짓밟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부의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를 ‘국가권력 남용 사건’으로 규정했다. 불교계는 법난이라 부른다. 앞서 신군부는 언론계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자와 논설위원들을 강제해직했다. 가히 언난(言難)이라 할 만한 만행이었다.

어느 텔레비전 방송의 정치드라마 <대물>이 인기인 모양이다. 어느날 초등학교 6학년 아들 녀석이 내 앞에서 중얼거리는 것 아닌가. “검사가 저렇게 센 거야? 국회의원들 불러다 족치는데….” 그래서 함께 들여다본 적이 있다. 이렇게 해명처럼 말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죄를 지으면 누구든 검사나 경찰 앞에서 꼼짝 못하고 조사받아야 하는 거야.”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리 높은 사람도 병이 생기면 의사한테 가서 머리를 조아리는 거나 마찬가지지 뭐….” 녀석의 반응은 엉뚱하다. “죄인만 족치는 검사나 환자만 상대하는 의사나 다 좋은 직업이 아니군.” 여느 부모처럼 아들이 검사나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나는 의외의 결과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번 국회의원들에 대한 검찰의 강권 발동이 ‘대물’의 드라마 효과가 아니기를 바란다. 권력의 눈치 안 보는 기개 높고 정의감까지 갖춘 검사가 극화되는 것엔 나도 박수를 치고 싶다. 어떤 사람에게도 그 범법행위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왜 잠시나마 정난이란 말을 생각했을까.

첫째, 검찰권의 두 기둥인 수사권과 기소권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정부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검찰권도 정부의 형사정책에 종속된다. 정치적 독립성을 약화시키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국가 정책으로서 우선순위와 시행 시기를 가려서 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회의원들의 대정부 질문이 한창인 때에 강제 수사권을 발동했느냐는 비판이다. 검찰 수사권이 의회정치라는 헌정의 기본질서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의회정치의 부산물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정치자금 부조리를 바로잡으려다 의회정치 자체를 죽이는 교각살우가 돼서야 되겠는가.

둘째, 검찰의 강제 수사권은 강기정 민주당 의원의 대정부 질문 직후 그가 포함된 의혹사건을 대상으로 전격 발동됐다. 또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 청와대 쪽이 대포폰을 준 것으로 드러나 유구무언 상황인 때 터졌다. 정치권은 ‘비상계엄’이니 ‘망나니 칼춤’이라며 극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는 검찰 수사권을 이용해 국회를 위협하고 있다는 여야의 한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대립이라는 국정 파탄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청와대 쪽은 검찰과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거꾸로 검찰이 최고 권부의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국민은 성숙한 국정 운영과 최고 지도자의 어른스러움을 보고 싶어한다. 의회정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치권의 탈법행위를 척결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 것이 그것이다.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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