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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21 21:09 수정 : 2010.12.22 10:22

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장자>의 ‘잡편’에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달팽이 뿔의 싸움이라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위나라 혜왕은 맹약을 어기고 침략한 제나라 위왕에게 보복하고자 한다. 신하들은 주전론과 주화론으로 팽팽하게 맞선다. 이에 현신 혜자가 대진인을 혜왕과 만나게 한다. 대진인이 왕에게 말한다.

“대왕께서는 달팽이를 아시지요. 달팽이 왼쪽 뿔에 촉씨라는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 만씨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들이 영토를 놓고 싸워 숱한 주검이 생겨났고, 패주하는 적을 쫓아갔다가 보름이 지나서야 돌아왔습니다.” 왕이 거짓이라고 하자 대진인은 물었다.

“대왕께서는 사방 위아래 공간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끝이 없다는 왕의 답변을 듣고 난 다음 대진인이 덧붙인다.

“무한공간에 정신을 두고 유한한 땅을 돌이켜본다면 이런 나라는 아주 하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유한한 이 땅에 위나라가 있고, 그 위나라 안에 나라의 수도인 양이라는 고을이 있으며, 그 양이란 고을 안에 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왕과 만씨 사이에 구별이 있습니까.”

12월20일 연평도에서는 한 시간 반 동안 사격훈련이 있었다. 공군 전투기가 북의 대응 양상을 살피고, 연평도 주민뿐 아니라 인천 시민들까지 불안에 떠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인 남과 북의 대결 양상은 국제적인 관심 대상이 되었고, 세계인들은 어렵지 않게 남북전쟁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무슨 까닭인가.

북한을 지원하지 않으면 3대 세습으로 어수선한 북한은 자동적으로 붕괴한다는 시나리오에 입각한 대북정책이 강력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얼마 전 숨진 북의 망명객 황장엽의 주장이 여기에 힘을 실어주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 기조는 금강산관광 중단과 개성공단 축소, 천안함 사태를 통하여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문제는 연평도 포격으로 야기된 남북관계의 극단적인 악화가 불러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와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이 된 예는 한국이 유일하다. 전쟁의 폐허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독재를 뚫고 이뤄낸 값진 성과를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연평도 사격훈련의 함의는 새로 개편된 국군 수뇌부 전열 정비, 대북한 경고 메시지, 국제사회를 향한 대한민국의 건재통지, 그리고 국민통합일 것이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는가. 문제를 더 키우지 말고, 이제는 신중하고 침착하게 혹시라도 있을 전쟁 발발 가능성을 아예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살육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숱한 인명 살상과 파괴를 동반하였다. 그러기에 전쟁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극력 피해야 하는 최악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영토와 재산, 인력 확보를 목적으로 한 전쟁은 이제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세계는 지금 정보와 기술, 경제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자국의 이익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허다한 인명 살상을 전제로 한 전쟁놀음을 부추기는 모든 행위는 즉시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혜왕에게 들려줄 말을 하고 난 다음 대진인은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혜왕이 문득 깨닫고 전쟁 중지를 선언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와각지쟁’은 우리에게 삶과 존재의 본원적인 자세를 일깨운다. 무엇을 위해 인간이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 희생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최고권력자와 집권세력은 이 점을 각별히 유념하고 명심할 일이다. 권력은 유한하되, 민족은 영원해야 하며, 분단은 폭력이나 전쟁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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