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28 22:06
수정 : 2011.03.2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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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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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했다. 이듬해 소비자단체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남양유업’ 이유식에서 방사능이 나왔다고 밝혔다. 검사 결과 원료인 카제인나트륨의 베타방사능 오염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체르노빌 방사능으로 오염된 식품원료를 들여와 이유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양유업의 이런 행위가 ‘합법’ 판정을 받았다는 데 있다. 당시 국내 식품법에는 방사능 항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허술한 제도와 관리의 결과였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시금치, 우유에 이어 수돗물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나왔다. 토양, 물, 바다 오염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일본 식품 수입을 금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사능 물질이 바람을 타고 절대 우리나라에 올 수 없다고 단언하지만 방사능 전파 경로는 많다. 식량자급률이 26%에 불과한 우리는 더욱 위험하다.
며칠 전 일본 정부는 유아에게 수돗물을 먹이지 말라고 통보했다. 이에 시민들은 사재기 등 공황상태에 빠졌다. 어린이들은 내성이 적어 더 위험하기도 하지만, 수돗물 또는 식품 섭취로 몸에 들어오는 방사능 물질이 가장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쿄 수돗물에서 나온 방사성 요오드가 우리나라의 일상적 수돗물 검사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수돗물 기준에 아예 없어서 애초 검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돗물 안전을 책임지는 환경부는 염분이 포함된 지하수에서만 일부 방사능 물질을 규제할 뿐, 국민 대부분이 마시는 수돗물에서는 뺐다. 이에 환경부는 “재해 발생 시에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식품·음료 등의 소비 통제를 하며, 일본도 수돗물 기준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식약청은 “식품공전에는 식품의 방사능 물질 잔류기준이 있다”며 “우유와 유가공품은 요오드-131이 리터당 150베크렐로 돼 있다”고 밝혀 자체 규제가 없는 환경부와 대비된다. 이는 같은 문제를 놓고 각각 식품과 수돗물 담당인 두 기관이 서로 다른 대응을 하는 것이어서 환경부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환경부도 수돗물 방사능 물질의 일상적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허용기준치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방재대책법’ 시행규칙에는 물의 오염 허용기준을 세슘-137은 200베크렐, 요오드-131은 100베크렐로 규정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는 이보다 각각 20분의 1과 10분의 1의 허용한계치로 훨씬 엄격한 관리를 권장한다. 우리는 원전사고 같은 비상사태에 적용하는 기준인데도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치보다 10배에서 20배 허술한 셈이다. 세계보건기구는 191개 항목의 방사능 물질을 관리하도록 권장하고, 일상적인 관리법도 제시해 놓았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이런 기준에 따라 일상적인 검사를 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원전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다 핵재앙을 맞은 정부에 분노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도 국민의 안전보다는 원전을 자신의 치적 홍보용으로 쓰는 모습을 보여 실망을 줬다. 3년 전에는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포기해 많은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용산 참사와 4대강 사업에서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경시하는 모습마저 보여줬다. 이번에도 그럴까 불안한 이유다.
아직 우리나라 제도와 관리에는 허점이 많다. 21기의 원전이 운영중이고 원전 밀집도가 세계 1위라면 그 위험성은 크다. 당장은 원자력산업계와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기관에서 수돗물·먹거리의 방사능 오염을 상시적으로 검사해야 한다. 세계식량기구와 국제원자력기구가 제시한 ‘방사능 유출시 행동강령’의 경과시간별 대응조처에 대해 우리 정부의 이행실태도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이미 여러 나라가 원전정책 재검토를 결정했다. 우리도 원전을 대폭 증설하려는 원전정책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때다. ‘방사능 이유식’은 단 한 번도 너무 많다.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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