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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2 20:49 수정 : 2016.05.12 20:49

1993년 10월의 일이다. 당시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 케네스 퀴노네스가 북한을 방문했다. 중단되어 있던 북-미 고위급회담 재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장의 소득은 없었다. 하지만 평양을 떠나기 직전 퀴노네스는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 강석주로부터 석 장짜리 메모를 받았다. 손으로 쓴 영문 메모였다. 핵심 내용은 ‘정치·경제 등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논의하는 데 미국이 동의하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통상·임시 사찰을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일괄타결을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퀴노네스가 이 메모를 들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의견을 조정해 1994년 8월에 북-미 고위급회담이 재개될 수 있었고, 10월 제네바 합의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퀴노네스가 받은 메모를 실제 작성한 사람은 당시 북한 외교부 국제기구국 부국장 리용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랫동안 북한 관료들을 상대한 퀴노네스는 여성스러우면서 깔끔한 영어 필체를 보고 리용호가 작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영국 대사, 아일랜드 대사를 거쳐 외무성 부상을 하다가 이번 당대회 기간에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다. 외무상이 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어쨌든 그가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된 리수용과 함께 북한 외교의 실세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리용호가 북한 외교의 실세로 등장한 것은 긍정 신호가 아닐 수 없다. 1차 북핵 위기 당시부터 오랫동안 핵문제를 다뤄왔고, 서구를 잘 아는 전문 외교관이다. 핵문제를 협상으로 풀 수 있음을 밝혀왔다. 2012년에는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면 핵무기를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얘기까지 한 적이 있다. 물론 북한은 김정은 당 위원장이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일인지배체제이지만, 전문관료의 역할은 중요하다. 외교와 안보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서는 그 역할이 더 크다.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할 때 김일성 주석도 카터의 제안을 놓고 홀로 배석하고 있던 강석주와 7분 동안 토론한 뒤 수용했다. 최고권력자의 지근거리에서 실세관료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또 하나의 긍정 신호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 못지않게 5개년 전략의 발표 자체도 주목거리다. 장기경제발전 계획을 세울 만큼 상당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첫 5개년계획이 발표된 것이 1958년이다.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1953년 8월 북한은 3년간(1954~1956)은 경제를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기간, 이후 5년간(1957~1961)은 공업화 토대 구축 기간으로 하겠다는 안을 마련했다. 1956년 말 5개년의 구체적 계획을 발표하려다 경제사정이 안 좋아 계획보다 1년 이상 늦은 1958년 3월 당대표자회에서 공표했다. 이런 사례에 비추어 보면 7차 당대회에서 5개년계획을 대외에 공표한 것은 상당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더욱이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최고 수위’에 오름으로써 북한 내부정치에서 자신의 권력을 한층 공고화했다. 그런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당대회를 연 것이기도 하다. 이는 눈을 바깥으로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할 수 있다. 권력기반이 흔들릴 때는 외부세계와 대화하고 문을 열기 어렵다. 어떤 권력자든 우선은 권좌를 유지하는 것이 급한 일이다. 이게 이루어진 뒤에야 외교나 개혁·개방 같은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다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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