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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15 19:12 수정 : 2017.06.15 20:47

임재택
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 이사장, 부산대 명예교수(유아교육)

박근혜 정부의 교육적폐가 국사교과서 국정화였다면,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인 교육적폐는 유아교육을 획일화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유아 보육교육에 예산을 지원하면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획일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강제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예산 지원을 중단했다. 아무리 좋고 바람직한 프로그램이 있어도 시행할 수 없으니, 누리교육과정의 국정화였다.

게다가 정부 누리교육과정은 하루 종일 아이들을 비좁은 공간에 가둬두고, 수험생처럼 주입식으로 가르치도록 한다. 교사는 13권에 이르는 교사용 지도서와 시디(CD)에 따라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또 교육 및 보육계획안을 연간, 월간, 주간 단위로 작성하고, 하루 A4 용지 5장 분량의 일일 교육계획안을 작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300여개에 달하는 평가지표를 통과해 국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교사는, 한창 스킨십이 필요한 아이들을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없고, 아이들은 놀이와 활동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고 충족시키며 각자 나름의 잠재력을 키울 수 없다. 이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규격화된 상품처럼 만들어진다.

그 결과는 끔찍하다. 유치원,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은 사립유치원 민간어린이집의 문제와 더불어 이런 획일화된 억압적 교육과정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으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잡일에 치인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나 아이들의 충돌은 피하기 힘들다. 평가를 강화하고 국공립 유치원·어린이집 증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 유아교육·보육의 주인은 아이다. 유아교육·보육의 모든 이론과 실제는 아이에게서 나와야 한다. 아이는 교실 밖으로, 놀이터로 강이나 숲으로 나가야 한다. 설사 누리교육과정 수업을 하더라도 강과 숲과 놀이터에서 해야 한다. 게다가 획일화돼 있다 보니, 이미 검증된 생태 유아교육, 숲유치원교육, 공동육아교육, 발도르프 유아교육, 레조에밀리아 유아교육, 몬테소리 유아교육, 장애아 통합 유아교육을 할 수 없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설립운영 목적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 증진에 있다. 현행 누리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양계장식’ 교육과 보육, 하루 12시간씩 ‘가두리 양식장식’으로 실시해온 실내보육, 교실·수업·교사 중심의 유아교육으로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이제 중앙집권체제의 획일화된 누리교육과정과 표준보육과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분권 체제의 다양화와 운영의 자율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유치원과 어린이집 현장에서 최고 억압수단으로 작동해온 유치원 평가와 어린이집 평가인증 시스템도 바뀌게 될 것이다. 행정편의의 종래의 평가인증 판단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이 판단의 기준이 되고 경쟁력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적폐 해소 1호가 국정 국사교과서 폐기였다면, 2호는 국정체제로 획일화된 누리교육과정과 표준보육과정을 다양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유아교육 현장이 일일 교육계획안에 매달리지 않고, 300여개에 달하는 평가지표에서 벗어나게 되면, 아이들은 몸과 마음과 영혼의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고,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아동학대나 폐회로텔레비전(CCTV) 감시, 통제, 평가, 불신, 경쟁이 사라진 새로운 유치원 어린이집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새 정부는 결단해야 한다. 더불어 신명 나는 아이, 신명 나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 낳아 키우고 싶은 세상, 결혼 기피증과 출산 기피증이 사라진 인구절벽 시대에서 탈출하는 하나의 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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