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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25 19:12 수정 : 2014.06.26 13:54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매거진 esc] 김훈종의 라디오 스타

처음에 데스크가 나를 월드컵 공개방송 담당으로 지목했을 땐 두 귀를 의심했다. 10년차 라디오 피디로서 오만가지 공개방송을 다 해봤다. 심지어 점심에 인천 해병대에서 군부대 위문 공개방송을 하고 같은 날 저녁 소래포구 축제에서 공개방송을 해본 적도 있다. 아침 7시에 하는 러시아전 공개방송은 새벽 4시, 알제리전은 새벽 2시부터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공개방송만 수천건 해본 30년 관록의 베테랑 엔지니어도 이 시간에 공개방송을 하는 건 처음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잠이 오지 않았다. 우선 그 시간에 관객이 모일까 걱정이었고, 가수들이 과연 섭외에 응해줄지도 의문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전이 있던 6월18일, 0시부터 붉은악마들이 코엑스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새벽 4시 공개방송이 시작도 하기 전인데 새벽 영동대로는 붉은색 물결로 넘실거렸다. 4만5천명이 모였다. 출연진도 마찬가지였다. 섭외하기가 미안해서 전화기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잘나가는 가수들이 흔쾌히 응했다. 씨스타, 걸스데이, 이정, 선미, 캔, 오렌지캬라멜 등이 그 새벽에 나와 열창했다. 23일 알제리전을 앞두고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진행을 맡은 김창렬 디제이는 감기몸살에 걸린 몸으로 두시간 내내 비를 쫄딱 맞으며 투혼을 발휘했다.

무대가 워낙 뜨거워서였을까. 출연한 가수들은 들뜬 분위기 속에서 무리한 공약을 뱉어냈다. 먼저 걸스데이 멤버들은 16강에 진출하면 선수들과 프리허그를 하겠다고 했다. 요즘 가장 뜨거운 걸그룹 에이오에이(AOA)는 승리의 보답으로 ‘게릴라 콘서트’를 약속했다. 캔의 멤버 배기성은 알제리전을 앞두고, ‘만일 우리가 승리한다면 비키니를 입은 채 삼성동 코엑스를 한바퀴 뛰겠노라’는 최강 무리수를 뒀다.

사실 비키니 공약의 원조는 <에스비에스> 디제이 최화정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 비키니 공약을 내걸어 화제가 됐다. 우리 대표팀이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쾌거를 이룬 덕분에, 청취자들은 하늘색 비키니를 입고 진행하는 최화정 디제이의 모습을 방송 내내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호란의 파워에프엠> 진행자로 발탁된 호란(사진)은 러시아전에서 이기면 사흘 동안 한복만 입겠다고 공약했다. 비록 러시아전이 무승부로 끝나는 바람에 사흘 한복 공약은 무산됐지만, 하루 동안 화려한 보랏빛 한복을 입은 채 생방송을 진행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는 <김흥국, 박미선의 특급쇼>의 담당 피디였는데, 4년마다 도지는 김흥국 디제이의 ‘월드컵병’ 때문에 무척이나 골치 아팠다. 월드컵만 열리면 모든 고정 프로그램을 하차하고 월드컵 개최국으로 달려가는 병이 바로 ‘김흥국-월드컵병’이다. 거의 한달 동안을 디제이 자리를 비우고 독일로 응원 가겠다는 걸 겨우겨우 뜯어말려 열흘 휴가로 절충했다. 그는 이번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도 어마어마한 공약을 내걸었다. 얼마 전 한 방송에 출연해서는 “대한민국이 8강에 진출하면 몸 안에 난 모든 털을 한 올도 남김없이 밀어버리겠다”고 했다. 말 그대로 무모(無毛)한 공약이다.

러시아전과 알제리전 공개방송은 이미 치렀고 드디어 내일 벨기에전 공개방송이 남아 있다. 희망은 아직 남아 있다. 벨기에전을 잘 치른 덕분에 가수와 디제이들의 무리하고 무모한 공약들 중 하나는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지면을 빌려 나도 공약 하나 던진다.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한다면, 사비를 털어 <김창렬의 올드스쿨> 애청자들 중 16명을 뽑아 반드시 좋은 선물을 보낼 것이다. 정말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면 사비를 털어도 아깝지 않으리라. 탈탈.

김훈종 SBS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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