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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08 20:24 수정 : 2014.10.09 11:26

손승연(맨 왼쪽)과 마마무. 에스비에스 제공

[매거진 esc] 김훈종의 라디오 스타

해마다 에스비에스 <케이팝스타>란 오디션 프로그램 예선 심사를 보러 가면 늘 느끼는 점이 있다. 브라질 청소년들에게 축구가 유일한 탈출구인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겐 아이돌이 되는 게 유일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인 양 절박하다. 그런데 정말 재능이 단 1그램도 없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내 소중한 주말을 이 친구들 추억 만들기에 쏟아부어야 하다니! 쩝. 아무튼 200명 넘는 인원을 심사하다 보면 무척 지겨워진다. 특히나 참가자들의 선곡이 마치 짠 듯이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선곡 패턴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 내 폭발적 가창력에 한번 죽어 봐라 으름장 놓는 ‘으악형’. 주로 비욘세, 아델, 비엠케이, 김범수처럼 누구나 가창력 하나만큼은 인정하는 국내외 가수들의 히트곡들을 목청껏 부른다. 둘, 엑소의 ‘으르렁’이나 샤이니의 ‘링딩동’처럼 메가히트된 아이돌의 노래를 자기 나름의 편곡으로 새롭게 해석해 부르는 ‘아티스트 코스프레형’. 주로 통기타를 메고 어쿠스틱하게 편곡해 기존의 댄스곡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부른다. 마지막으로 ‘족집게 과외형’이 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업계 사람이라면 알 만한 노래를 선곡해 나름의 센스와 가창력을 뽐내는 유형이다. 실용음악학원 같은 곳에서 곡명이나 창법을 정해주고 있다는 혐의를 두게 된 이유는 우연으로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같은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선 심사위원은 보통 방송 피디, 작가 , 기획사 캐스팅 디렉터가 한 명씩 3인 1조로 심사를 보는데, ‘족집게 과외형’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은 기획사 캐스팅 디렉터들이 이미 알고 있는 얼굴들이 많다. “저 친구 제이와이피 강원도 오디션장에서 본 친구예요” 혹은 “쟤 또 보네요. 전라도 광주 에스엠 오디션 본선에서 봤던 친군데요”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심사위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셋 중에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으악형’을 택하겠다. 물론 비명 같은 노래라도 그 속에 빛나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 좋아서 노래하는 아이들은 기획사에서 다듬어진 예비 뮤지션과는 확연히 다른 자생력과 감수성의 에너지를 전한다. 하지만 현실은 250명 중 1~2명 정도 그런 참가자가 있을까 말까 할 뿐이고 족집게 과외 학생들이 대부분인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이돌 음악 일색인 가요 생태계를 닮았다. 오디션 무대에선 가창력을 중시하는 노래가 대부분이지만 어쩐 일인지 음악 방송에선 이런 노래를 듣기가 어렵다. 우리가 전하는 음악이 아이돌 일색의 말라버린 가지 같다는 느낌이 들 때 라디오 피디는 슬럼프에 시달린다.

2008년 즈음 라디오 피디라는 직업이 새삼 행복해진 적이 있었다. 하루는 <텐텐클럽>에 김조한, 성시경, 김범수를 한꺼번에 불러 라이브를 했는데, 정말이지 귀가 호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착시를 경험했다. 귀로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퍼지는데, 내 눈에는 서로간의 경쟁심이 보였다. 마치 노래를 부르며 서로에게 뒤돌려 후려차기를 하고 단도를 던지는 듯 보였다. 또 다른 날은 서문탁, 소찬휘, 비엠케이를 한방에 몰아넣고 라이브 코너를 가졌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방송을 마치고 디제이 하하가 스튜디오에 있던 모두를 끌고 방송국 근처의 대합수제비탕 식당으로 향했다. 맥주를 흡입하며 지난 한 시간 동안의 라이브 곡들을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우리는 맥주에 취하고 그녀들의 라이브에 또 한번 취했다. 만취한 상황에서 ‘신인 가수들로 이런 무대를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일전에 리쌍을 따라왔던 콘로(cornrow) 헤어스타일의 소녀 알리가 떠올랐고, 뒤이어 나비가 생각났다. 수제비탕 속에 몇 개 들어 있지 않았던 대합이 미처 소화되기도 전에, 알리와 나비로 이루어진 라이브 무대가 성사되었다. 스튜디오와 시청자 게시판은 두 디바의 열창으로 폭발할 듯했다.

최근 내가 담당하는 <김창렬의 올드스쿨> 추석 특집에 손승연과 벤이 잇달아 출연했다. 두 가수의 열창을 들으니 속이 뻥 뚫린 것 같다며 청취자들이 좋아했다. 라디오 피디를 목마르게 하는 ‘진짜 가수 가뭄’에도 김조한, 성시경, 김범수, 알리, 비엠케이, 나비, 허각, 바버렛츠, 마마무, 제이민, 제이래빗 등등 오아시스 같은 가수들이 여전히 있다. “신에겐 아직 12명의 보컬이 남아 있사옵니다.”

김훈종 SBS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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