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05 20:28
수정 : 2014.11.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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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소울스케이프.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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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훈종의 라디오 스타
<애프터 클럽>을 아신다면 당신은 완벽한 올빼미족! 매일 새벽 3시부터 한 시간 동안 음악으로 새벽을 두드린 지 벌써 일 년. 검정치마,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사진), 푸디토리움, 박주원, 김예림, 정기고 등등 음악적 성향이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의 스펙트럼도 제각각인 7명의 디제이가 매일 하루씩 돌아가며 독특한 향취의 음악을 준비한다. 라디오 피디가 꼭 해야 할 일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선곡이다. 그런데 <애프터 클럽>은 진행하는 디제이가 피디처럼, 아니 클럽 디제이처럼 자기가 곡을 골라 1시간짜리 믹스를 만들고 진행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새벽 3시부터 라디오로 나오는 클럽형 음악방송인 셈이다.
박주원은 기타 실력이야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연주자이고, 푸디토리움 역시 영화음악계에서 그 실력을 검증받은 뮤지션이다. 영화 <멋진 하루>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가, 그의 음악에 푹 빠진 하정우가 손을 내밀어 다큐 영화 <577 프로젝트>와 하정우 첫 연출작인 블랙코미디 영화 <롤러코스터>의 오에스티도 담당했다. 워낙에 방송 출연을 안 해 신비주의에 싸여 있는 검정치마 조휴일의 수줍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그중 나는 금요일을 담당하는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와 인연이 있다. <하하의 텐텐클럽>을 담당하던 2007년 즈음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를 알게 됐다. 당시 토요일마다 디제이 스케줄원이 고정 게스트로 나와 ‘새터데이 힙합클럽’이란 코너를 진행했다. 1시간 내내 힙합 음악이나 댄스 음악을 틀어놓고, 토요일 밤 클럽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코너였다. 이때도 디제이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1시간짜리 믹스 음악을 준비해 왔다. 가끔 하하와 디제이 스케줄원이 추임새를 넣는 게 다였던 코너인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러다 갑자기 고정 게스트이자 음악을 준비해주던 디제이 스케줄원이 개인 사정상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대안을 물색하느라 많은 디제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낙점한 인물이 바로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였다. 당시 그는 홍대 앞 한 힙합 레이블에서 음반도 내고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가수 겸 디제이였다. 그가 고정 게스트를 맡았던 3개월 동안 새로운 음악 세상을 만났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당시 그는 남미 음악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브라질 음악이나 라운지 음악을 주로 소개할 때는 에스피오네란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프랑스어로 관찰자란 뜻의 에스피오네란 이름처럼 그의 믹스는 차분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가 신중현의 음악을 가져올 때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복고 음악, 특히나 70년대 음악에 관심이 많고 음악적 조예가 깊었다. 그의 작업실엔 수만장의 엘피가 쌓여 있었는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커다란 표준 크기의 엘피부터 손바닥만한 도넛 엘피까지 크기도 다양하고 음악의 스펙트럼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했다. 그중에 흔히 신중현 사단이라 불리던 펄시스터즈, 박인수, 김추자, 장현, 김정미의 음악을 선곡해 오는 날이면 내가 미쳐버렸다. 지글거리는 노이즈 사이로 김정미의 허스키하면서도 끈적이는 목소리가 퍼져 나오면, 방송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그대로 뛰쳐나가 포장마차에서 어묵탕에 소주 한잔을 넘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는 스티비 원더의 음악이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은 틀면서 왜 우리 70년대 주옥같은 음악들은 에프엠 채널에서 못 트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곤 했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선곡에 푹 빠져 있던 어느 날 그는 고정 게스트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이별통보를 했다. 남미, 특히 브라질의 음악을 연구하러 떠난다는 것이었다. 엘피 수백장 정도는 챙겨 오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짊어지고 올지 앞일을 걱정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그가 선곡한 음악을 한시간 내내 들을 수 있는 <애프터 클럽>이 만들어졌다. 요즘 가수가 하는 록페스티벌만큼이나 디제이들이 선곡하고 믹스한 음악을 트는 디제이 페스티벌이 인기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그가 모은 수백장 엘피를 짊어지고 디제이 페스티벌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요즘도 가끔 잠이 오지 않는 새벽 그의 선곡을 들으며 7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간다. 김정미의 끈적이는 ‘간다고 하지 마오’가 자꾸 귓가에 맴돈다.
김훈종 SBS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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