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19 20:44
수정 : 2014.11.20 13:50
[매거진 esc] 김훈종의 라디오 스타
장면 하나. <하하의 텐텐클럽> 생방송을 진행할 때다. 월요일 <묻지마 상담> 코너의 고정 게스트인 김장훈이 11시부터 출연 예정인 날엔 담당피디인 나는 언제나 똥줄이 탄다. 작가들은 연신 김장훈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댄다. 매주 반복되는 일상이다. 김장훈이 스튜디오로 들어와 그 긴 얼굴을 보여줘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고정 게스트지만 갑자기 독도를 지키러 떠나거나, 태안반도에 기름을 걷어내러 떠나는 그의 오지랖 덕분에 스태프들은 늘 가슴을 졸인다. 행여 방송 펑크를 내도 워낙에 좋은 일을 하러 가는 것이기에 뭐라고 욕도 못 한다. 도리어 마주쳤다 하면 “김 피디도 주말에 태안 같이 가서 청소 좀 하고 오자”라든가 “우리 독도 가서 생방송 한번 해볼까”란 스펙터클한 제안으로 내 입을 막아버리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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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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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둘. 2013년 8월9일 간만에 앨범을 낸 이승철이 <김창렬의 올드스쿨>에 초대손님으로 출연했다. 이승철이 라이브로 노래 한 곡 부르자, 찬양과 감탄의 글이 게시판을 뒤덮는다. 김창렬이 청취자들을 대신해 묻는다. “도대체 노래를 왜 이렇게 잘해요?” 이승철이 답한다. “타고나는 거예요. 백날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거죠.” 시크하고 단호한 대답. 억지 겸양이나 방송용 멘트는 개나 줘버려! 이게 그의 마인드다. 광고가 나가는 시간에도 독설은 이어진다. “야! 난 진짜 창렬이 니가 이렇게 디제이 오래 할 줄 몰랐네. 벌써 8년째라고? 대단하다. 난 너 1년 정도 하다가 사고 치고 그만둘 줄 알았잖아.”
얼마 전 가수 이승철이 일본 하네다 공항으로 입국하려다 거부당한 뒤 그는 항의의 의미로 ‘그날에’란 곡을 무료로 배포하면서, “지난 8월14일 독도에서 이 노래를 부른 데 따른 표적성 조치라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날에 하나 된 나라를 꿈꾸며’란 제목으로 만든 독도 관련 블로그는 불과 며칠 만에 15만명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 가수 김장훈이 빠질 리 없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날에’ 음원과 공연실황을 올려 퍼뜨려달라고 부탁하는 한편, 자신의 신곡 ‘살고 싶다’에 독도 공연 실황과 독도 수영 횡단 영상을 삽입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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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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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과 김장훈. 데뷔도 다르고, 장르로 다르고, 뮤지션으로 걸어온 길도 생판 다르지만, 두 가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꽤나 많다. 우선, 이승철은 월드투어를 앞두고 일본과 전면전을 선언한 셈이다. 배용준처럼 일본에 어마어마한 팬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일정 수준의 티켓파워를 가지고 있는 이승철로서는 눈앞의 이익을 그대로 포기하는 셈이다. 김장훈 역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단식에 동참하는 등 자신의 신념에 따라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왔다. 음반을 팔고 방송에 얼굴을 비추고 광고를 찍어야 하는 연예인의 입장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고 용기다.
묘하게도 둘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옛날 식’ 정이 많다. 하루는 점심 즈음에 라디오센터를 불쑥 찾아온 김장훈이 짜장면이나 함께 먹자며 눈에 보이는 라디오 스태프들을 전부 데리고 방송사 앞 중국집으로 향했다. “맨날 스튜디오에서 얼굴 보는 사이에 밥 한끼 제대로 같이 한 적이 없어서 늘 아쉬웠다”며 탕수육에 독한 술 한잔씩 돌리는 그는 영락없이 큰형님 스타일이다. 몇 년 전 간만에 낸 신곡이 가요차트에서 1등 했노라고 직접 쪄온 떡을 돌리던 이승철은 또 얼마나 정감 있던지! 요즘은 신인가수들도 잘 안 하는 행동을 하는 그를 보며 속으로 “참 옛날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뭔가를 하면 득보다는 실이 날 확률이 훨씬 높은 곳이 연예계다. 하지만 두 형님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참고는 못 사나 보다. 내가 그들의 가족이나 매니저라면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뜯어말릴 것 같다. 하지만 갈수록 ‘개인 사업자’들로 채워지는 연예계에서 여전히 무사한 동네 큰형님은 반갑다. 나는 내 앞가림만 잘하는 똑똑이들보다는 오지랖 떠는 형님들이 더 좋다.
김훈종 SBS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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