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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4 20:20 수정 : 2015.01.15 10:38

사진 김훈종 제공

[매거진 esc] 김훈종의 라디오 스타

주말, 인터넷을 뒤적이다 화들짝 놀란다. 멜론, 지니, 벅스. 주요 음원사이트가 순식간에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1994년 여름, 강남역 한복판에 댄스음악을 울려대던 불법 믹스 테이프 판매 리어카 한구석에 사장님이 매직으로 적어놓았던 ‘길보드 차트’의 부활이다. 추억의 주소비자층인 30~40대는 그렇다 쳐도 20년 전 가수들의 댄스곡이 요즘 청소년들에게도 통했다니 신기했다.

엠본부 <무한도전>의 특집방송 ‘토토가 효과’다. 사실 ‘토토가’의 음악을 지난 9년간 매일 두 시간씩 틀어온 <김창렬의 올드스쿨>의 담당 피디인 나로서는 이 현상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만의 방송 주제를 빼앗겼다는 질투심이나 상실감도 있다. 그럼에도 ‘토토가’에 나온 터보의 원년 멤버이자 최고의 춤꾼, 김정남이란 인물은 너무도 궁금했다. 원년 멤버로 18년 만에 다시 뭉친 터보의 김정남과 김종국. 그사이 두 멤버는 극과 극 인생을 걸어왔다. 김종국은 여전히 톱스타로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지만, 김정남은 나이트클럽에서 홀로 터보의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어왔다.

지난 7일 <백 투 더 나인티스>란 특집 시리즈를 기획해서 터보, 이정현, 지누션, 김현정, 에스이에스, 조성모 등을 섭외했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첫 초대 손님인 김정남(사진)이 들어오는 순간, 난 19살 여드름 소년으로 돌아갔다. 잠자리 눈처럼 커다란 선글라스, 바늘구멍 하나 샐 틈 없이 바짓단을 줄인 쫄바지, 챔피언 시절 장정구의 권투화를 꼭 닮은 신발. 모든 게 그 시절 그대로였다.

방송이 시작되자 18년 만에 깨어난 냉동방송인, 가수 김정남은 완벽히 부활했다. 디제이 디오시 1집 타이틀곡의 안무를 열심히 짜주었지만 결국 이주노의 안무로 바뀌어 퇴짜를 맞았던 추억담, 마이키, 김종국과 더불어 3인조 터보로 부활해 디제이 디오시의 아성을 위협하겠다는 선전포고까지, 너스레로 스튜디오를 장악했다. 돌아온 김정남에 대한 청취자들의 반응은 ‘목격담’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신천 ○○나이트에서 봤어요. 오빠!” “형님! 장안동 △△나이트에 오신 적 있죠? 그때 저랑 악수도 해주셨어요.” 줄줄이 이어지는 무도회장 목격담은 김정남의 신산한 18년 인생을 한눈에 보여주는 문자들이었다.

정상에도 서보고 고생도 해보아서 그런지 ‘옛날 가수’들은 마이크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보통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초대석 코너에선 게스트들은 처음 나올 때 한 번만 인사를 하는데, 터보 김정남이나 <백 투 더 나인티스> 2회 때 출연한 가수 김현정씨는 광고 후에도 또 인사를 하고, 노래가 나간 뒤에도 연신 인사를 했다. 진행자에게 촌스럽다고 구박을 받으면 마치 짠 것처럼 똑같은 멘트를 했다. “방금 라디오를 켠 청취자들은 우리가 누군지 모르니 다시 인사해야 합니다.” 톱가수로 꼽힐 때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18년 동안 여전히 한 가수의 팬인 사람들도 있다. 김현정이 출연한 날 팬클럽에선 “우리 언니 방송 재미나게 만들어주세요!”란 애교스런 부탁과 함께 스튜디오로 피자 10판에 콜라 30병이라는 통큰 뇌물을 보냈다. 어떻게 한 가수를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상투적인 말이지만 이것이 ‘노래의 힘’이라는 것 아닐까?

<한밤의 티브이 연예>를 만들다가 티브이 예능프로그램 피디를 그만두고 라디오국으로 오면서 내가 홀렸던 것도 주로 노래의 힘이었던 것 같다. 라디오에서 한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간은 길어야 3분. 라디오는 티브이처럼 화려한 퍼포먼스나 무대 연출을 보여주는 매체는 아니지만 그 3분 사이에 노래라는 넓은 바다에서 모두를 섞여 들게 한다. 지난 1년 동안 이 지면에서 라디오 스타라는 이름으로 강제 소환했던 디제이와 가수들은 모두 라디오 피디가 된 이후 그 바다에서 만난 활어들이었다. 하하, 김흥국, 변진섭, 김창완, 이승철, 알리, 데프콘, 이적, 김장훈 그리고 김창렬. 20년쯤 지나면 그들은 내 추억 속에서 흐릿해질까, 아니면 여전히 펄떡이고 있을까. 만약에 그때도 김창렬과 이적이 디제이 디오시와 패닉이란 이름으로 <가요무대>에 출연하고 있다면 그땐 나도 뜨끈한 피자 10판과 콜라를 양손에 싸들고 대기실로 찾아가 나만의 라디오 스타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올 테다. <끝>

김훈종 SBS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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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 김훈종의 라디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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