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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30 09:48 수정 : 2014.07.17 10:09

윤민우 소설 <원피스> ⓒ이현경

윤민우 소설 <1화>



변화가 필요해.

그 충동은 그녀가 헤어드라이어로 단골고객의 머리를 말리던 중 그녀를 세차게 흔들어놓았다. 그녀는 불쑥 고객의 머리칼을 가위로 난도질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에 휩싸였다.

이 여자를 좀 봐. 고작 일주일도 못 참고 머리를 새로 말고 있잖아.

고객은 잡지에 코를 박고 있었다.

일주일 후면 이 여자는 또 나타날 거야. 그런 다음 저 잡지 속 모델 중 한 명을 톡톡 가리키겠지. 좋아. 그럼 그때 가서 본때를 보여주지.

그러나 채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 그녀는 선수를 쳤다. 수년간 몸담아온 미용실을 하루아침에 때려치운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충동이 일시적이거나 단순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삶 속에 파마약처럼 배어 있는 불만들을 수첩에 하나하나 열거해나갔다. 그건 비참하고 괴로운 작업이었지만, 마침내 목록이 완성되었을 때 그녀는 묘한 기대와 희열에 사로잡혔다.

맨 처음, 그녀는 유방에 실리콘을 삽입시킴으로써 오랜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녀의 그러한 결단을 누구보다 지지했던 그녀의 백수 애인은 그러나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했다. 그 역시 그녀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차례는 그녀의 가족이었다. 그녀가 가진 콤플렉스 중엔 가난과 짧은 학벌이 포함되었는데, 그 예민한 부분을 가장 아프게 건드려온 상대가 다름 아닌 그녀의 가족이었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의 장녀(2남 1녀)였다. 그리고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단념하고 미용 기술을 익혔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녀의 부모는 그런 딸의 결정을 조금도 기특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냉정한 인생 선배의 관점에서 그녀의 진로에 대해 염려했고, 한편으로 실망하면서, 한편으로 거들먹거렸다. 남동생들은 한결 속 편하게 누나를 업신여겼다. 그들은 최신 유행처럼 철딱서니 없었다.

그녀는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졌다. 세상천지에 자기편이라곤 없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서러운 사회 초년생 시기를 그녀는 누구보다 혹독하게 겪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한테는 재능이 있었다. 정식 미용사로 데뷔하고부터 그녀에겐 단골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악착같이 일했다. 그녀는 월급의 삼분의 이를 꼬박꼬박 부모에게 가져다주었다. 그 덕분에 슬슬 집안 형편이 피고 그녀가 동생들의 학비까지 돌보게 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그녀를 인정하고 대접해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질적인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바야흐로 그 일가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녀는 살고 있던 전셋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러곤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아직 처분되지 않은 그녀의 목록들과 함께. 서울을 떠나는 고속버스 안에서 그녀는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무능력한 거머리들’이라고 표시한 부분에 붉은 사선을 그었다.

그녀는 지방 소도시의 모텔에 짐을 풀었다. 모텔의 욕조는 수년 동안 닦지 않은 이처럼 추악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욕조에 물을 채우고 거품을 푼 다음 그 속에 들어가 누웠다. 그녀는 삶을 새롭게 정비할 참이었고,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완전히 들떠 있었다. 다음 날부터 그녀는 방을 알아볼 작정이었다. 채광이 좋고 멋진 발코니가 딸린 그런 방을. 그녀는 엄선한 가구와 소품들로 자기만의 방을 꾸밀 계획이었다. 거기에 틀어박혀 지내는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안 될 게 뭐야? 돈이 떨어지면 시내 미용실에 자리를 구하면 그만이었다. 내친 김에, 그녀는 자신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길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타진해보았다.

“또 모르잖아요? 촌구석에서 브래드 피트 같은 남자를 낚게 될지.”

그녀는 욕조에서 걸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엔 김이 서려 있었다. 이제 손만 뻗으면 그녀가 꿈꾸던 그림 속 여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그녀는 거울을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포즈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건 확실히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녀는 처음에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녀는 한껏 쪼그라든 자신의 왼쪽 유방을 움켜쥔 채 겁에 질린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 바로 이 무렵의 일이다.




윤민우(소설가)




윤민우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에 단편소설 〈보이스카우트〉가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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