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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02 09:50 수정 : 2014.07.17 10:05

윤민우 소설 <3화>



“정말 감사했어요. 그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모처럼 상담센터에 출근했을 때, 나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왜 전에 가슴이 펑크 났던, 하고 그녀는 자기를 소개했다. 그녀를 기억해내는 덴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는 재수술을 받은 뒤였다. 서울이 아닌, 지금 그녀가 지내고 있는 도시에서. 수술을 받기 전, 그녀는 객관적인 증거들을 충분히 확보해두었다. 그녀는 의사의 말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녹음했다. 또 자신의 왼쪽 유방에 벌어진 끔찍한 사고와 자신의 처지를 강조하면서, 의사에게 몇 장의 각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의사는 어쩌다가 아주 골치 아픈 환자를 떠맡게 된 셈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에 쏙 드는 빌라를 발견해 얼마 전부터 들어가 살기 시작한 참이라고. 그녀가 그토록 시시콜콜 안부를 전하고 나자 마치 나 자신이 그녀의 후견인쯤 되는 양 여겨졌다.

“축하합니다.”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저, 그래서 말인데요. 만약 제게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선생님께 또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내 이름을 알고 싶어 했다.

그제야 나는 석연찮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한 달 만에야 상담원에 나왔다. 더구나 내가 상담원으로 자원봉사를 나오는 날은 일주일에 고작 이틀뿐이었다. 그녀와의 이 두 번째 통화는 단순한 우연일까?

“실은 선생님이 받으실 때까지 전화를 걸어봤어요.”

“내 이름을 몰랐기 때문이군요.”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요. 이제 성함을 말씀해주실 차례예요.”

“글쎄요.”

어차피 규정상 상담자의 이름을 밝히도록 되어 있긴 했다. 그러나 그처럼 개인적으로 이름을 소개하자니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빨리요, 하고 그녀가 재촉했다. 나는 얘기를 빙빙 돌렸다. 공교롭게도 나는 당대의 어느 유명인사와 이름이 같았는데 뚱딴지처럼 그 양반 얘기를 꺼내서는 한참을 에두른 끝에야 겨우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각하.”

그녀가 내 이름을 가지고 놀렸다.

“부디, 다시 통화를 나누게 되는 일이 없기를 빌겠습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밝고 건전한 소식보다, 어둡고 지저분하고 야비하고 어처구니없는 소식에 더 몰두한다.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마치 뚜껑이 달아난 맨홀에 빠진 양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곤 열린 세상을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부어댄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남달리 비관적인 기질을 타고난 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이 세계가 철근콘크리트처럼 공고하다고 믿을 만큼 순진할 뿐이다. 그 믿음은 백 년 전부터 있어왔고, 백 년 후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은 늘 잠재한다. 그것은 넘실대는 파도처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덮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어느 동화 속에서, 네덜란드 소년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둑에 난 구멍을 손가락으로 틀어막았다. 나는 그의 고독을 이해한다. 그가 손가락을 이용했다면, 나는 헤드셋을 쓰고 둑에 난 구멍에 귀를 기울인다. 특별히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평소에 참견을 좋아하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상담일을 하는 동안만큼은 내가 별것 아니라는 느낌과 싸우지 않아도 되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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