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우 소설 <4화>
신문을 읽고 있을 때, 동료 상담원으로부터 메모를 건네받았다.
발코니에 관한 상담접수. XXX 각하께.
메모를 전해준 여상담원은 벌써 등을 돌리고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웃고 있을까. 나도 웃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장난은 눈곱만큼도 재미가 없었다. 나는 일에 착수했다. 메모지 하단에 그 아가씨의 연락처와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쪽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맞습니까?”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어디 한번 들어볼까요?”
“발코니, 발코니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녀가 자신 없이 웅얼거렸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러니까 발코니가 아가씨한테 어떤 손해를 끼쳤습니까?”
“조금 전에,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아무것도, 그놈의 발코니 때문에 전부 엉망이 됐다고요.”
그녀는 한동안 새 보금자리를 꾸미는 데 열중했다. 벽지와 장판을 까다롭게 선별했고, 질감이 부드러운 커튼을 구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먹었다. 그녀는 목에 줄자를 친친 감은 채 집 구석구석을 배회했다. 조명 기술자와 사나운 입씨름을 벌인 끝에 천장의 일부를 뜯어내는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윽고 가구들이 도착했다. 가구들은 지정된 위치에 빈틈없이 안착했다. 그녀는 완벽을 기했고, 성과를 거두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원목 식탁에 앉아 차를 마셨다. 그녀는 평온함 속에서 자신이 이뤄낸 독립의 결과물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세탁 완료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그녀는 발코니로 다가가 모로 세워둔 빨래 건조대를 펼쳤다.
“화분들을 한쪽으로 죄 밀어붙여봤지만 건조대를 완전히 펼 수는 없었어요.”
“심각한 문제로군요.”
내가 말했다.
“그전까진 모든 게 완벽했어요. 평생 이 집을 지키며 살겠다는 각오가 들 정도로요. 그런데 지금은…… 만약 계약을 무를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을 택하겠어요. 하지만…….”
“위약금을 물게 되겠죠.”
“억울해 죽겠어요. 하필이면 건조대를 펼 수 없는 발코니가 딸린 집에 살게 되다니.”
“건조대를 조금 작은 사이즈로 바꿔보는 건 어떻습니까?”
“안 돼요! 고작 발코니 때문에 건조대를 바꾸다니.”
나는 건조대를 거실에 펼쳐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저도 알아요. 보통은 어느 선에서 양보를 해야 한다는 걸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이 집은 저에게…… 뭐랄까…… 맞아요, 의미가 각별해요!”
“정 그렇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나는 그녀에게 발코니 확장공사에 관한 절차를 설명해주었다. 간혹 있는 일이었다. 주로 오래 살던 집에 변화를 주고 싶은, 예컨대 발코니에 작은 정원을 꾸미고 싶어 하는 부인들이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웠기 때문에 의욕에 찬 문의자들조차 쉽사리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물며 빨래 건조대를 제대로 펴기 위해 그런 절차를 밟는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보통 일이 아니네요. 돈도 듬뿍 들어가겠죠? 그보다는 먼저, 일이라도 시작하는 편이 낫겠어요.”
“좋은 생각입니다.”
대체로 한가한 사람들이 문제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매번 감사해요. 혹시, 저한테만 특별히 잘해주시는 건 아니죠?”
“저는 모든 소비자들에게 평등합니다.”
“왠지 섭섭하게 들리는데요? 하여간 또 각하께 신세를 지고 말았네요.”
“이봐요 아가씨,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저씨, 아저씨는 지금 저한테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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