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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11 09:45 수정 : 2014.07.17 10:07

윤민우 소설 <10화>



구정 연휴 중에 나는 변호사 친구로부터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친구의 아내는 내게 편안한 옷을 내주었다. 나는 처음에 사양했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 나는 그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친구의 장성한 자녀들로부터 세배를 받았다. 나는 그들에게 흔쾌히 수표를 꺼내주었다. 푸짐한 식사를 대접받은 뒤, 나는 친구의 응접실에 앉아 곡주를 마셨다. 친구는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직원에 대한 인상과 몇 가지 우려사항에 대해 이야기했고, 신참에 대한 교육을 내게 일임했다.

“실은 자네 통장에 돈을 좀 넣었네. 그동안 자넬 너무 부려먹은 것 같아서 말이야.”

친구가 하룻밤 자고 가라는 것을 나는 끝까지 뿌리쳤다. 그렇게 나는 내가 진정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자리로 순순히 복귀했다.

연휴의 마지막 날, 나는 새벽부터 사우나에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우유와 주먹밥을 사다가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아직 이른 오전이었고, 내겐 터무니없이 긴 하루가 놓여 있었다. 나는 무심코 달력을 확인했다. 첫째 주 월요일 칸에 붉은색 동그라미가 그어져 있었다. 아내가 퇴원한 지 벌써 2주가 지나 있었다.

퇴원 날, 나는 아내에게 안개꽃을 안겨주었다. 아내는 꽃을 보며 화사하게 웃었지만 나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곁에서 아내를 돌보던 처제가 나를 따로 떼어냈다.

“언니는 결정을 내렸어요.”

우리는 이혼 수속에 들어갔다. 아내는 처형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요양을 떠날 예정이었다. 머지않아 이혼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에겐 매달 달러로 된 위자료를 아내에게 송금해주는 일만이 남게 된다.

나는 식탁 위에 신문을 펼치고 손톱을 깎아나갔다. 주위는 온통 손톱이 잘려나가는 소리로 가득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개운했다. 만사 또한 이처럼 평안하길. 나는 손톱을 깎으며 사회면 기사들을 눈으로 훑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토막의 흥미로운 제목을 발견했다. 도심서 맹수에 의한 피습.

무단으로 맹수를 반입해 사육해오던 독신녀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맹수는 생후 6개월가량 된 벵갈 호랑이로 길이 90센티미터, 무게 60킬로그램에 달했다. 신고자는 피해자의 헤어진 애인이었다. 그는 지난 두 달간 자신의 연락을 피해온 피해자의 집을 방문, 현관 너머에서 들려온 맹수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를 경찰에 알렸다. 이웃 주민들은 그간 아무런 기척도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맹수를 반입하게 된 경위를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 밝혔다.

기사에는 느긋하게 앞발을 핥고 있는 호랑이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나는 기사를 한 번 더 되풀이해 읽었다. 그러곤 나머지 손톱을 마저 깎은 다음 그대로 신문을 접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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