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 소설 <2화>
3.
주연아.
그곳 생활은 어때? 너무 덥지 않니? 넌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을 싫어하잖아. 얼굴 전체에 땀이 나고…… 특히 콧잔등과 인중에 땀이 많이 나서 늘 콤플렉스에 시달리곤 했었지. 수염이 난 것도 아닌데 늘 인중이 퍼렇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얼굴도 검은 편인데 더 검어졌을까 봐 걱정이다.
여긴 여전해. 봄이라서 라일락 향이 동네를 하루 종일 맴돌고 있어. 네가 가장 좋아하던 꽃이잖아. 라일락은 자기를 보이기도 전에 늘 향으로 먼저 존재를 알린다고 했었지? 깜깜할 때 동네 골목으로 들어서면 라일락은 안 보이고 그 향기가 먼저 풍성하게 반긴다고. 넌 자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곤 했었지. 지금도 그러니?
네가 떠난 게 한 달 전이고……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었네? 언니도 그새 임신 3개월 차에 접어들었어. 아직 입덧을 한다거나 그런 건 없어. 임신 체질인가? 나중에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는데 별걱정은 하지 않고 있어. 그러고 보니 넌 내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떠났지. 왜 그랬지? 뭐 아무튼…… 형부도 잘해주고…… 얼마 전엔 안개꽃을 한 다발 사오기도 했어. 알다시피 이 동네엔 꽃집도 없는데 어디 시내에 나간 김에 사온 건지 일부러 나간 건진 모르겠지만 나로선 정말 감동이었단다. 아버지에게도 잘해서 그제는 아버지 드시라고 홍삼도 사왔어. 물론 아버지는 홍삼을 먹고 술을 더 많이 마시고 또 홍삼을 먹고 술을 더 많이 마시고 그래. 홍삼 때문에 그런가 봐. 아무튼 건강하면 되는 거 아니겠니?
아 참, 태명을 뭐로 지을지, 도대체 몇 달째 고민인지 모르겠어. 도저히 못 짓겠는 거야. 넌 글을 잘 쓰고 하나밖에 없는 이모니까 네가 좀 지어줬으면 좋겠다. 연예인들의 태명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의 태명은 거의 다…… 너무…… 뭐랄까, 그러니까 내 말은 너무 거창한 건 싫더라구. 언닌 요즘 앞날을 참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늘 기분이 좋단다. 그래도 태명은 좀 점잖았음 해.
추신
1. 처음으로 이렇게 네게 메일을 쓰니 색다른 기분이 들어(좋다는 뜻).
2.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애 때문에 참고 있다.
4. 내가 처음 호주에 간다고 했을 때 언니는 호주? 하고 되물었다. 호주에 가면 농장에서 과일들을 따다가 사기나 당한 뒤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언니는 걱정했다. 막상 내 인중이나 걱정할 거였으면서. 아무튼 그때 아버지는 언니에게 임신도 했는데 너무 많이 걱정하지는 말라고, 쟤도 이제 서른이라고 말했다. 맘먹으면 호주가 뭐냐, 가봉도 갈 수 있지.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사실 언니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언니, 나 말이야. 호주가 아니라 파주에 살아. 아무튼 형부가 언니에게 잘해주는 것 같아 다행이다. 형부에게 전과가 있어서 처음에 아버지와 나는 언니의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언니는 덜컥 임신을 하고 말았다. 전과가 있다 뿐이지 2년 전부터는 성실히 사설 가스공사 같은 데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대전에 새 지부가 생긴다면서 언니를 대전까지 데려가려고 하는 걸 아버지가 겨우 말렸다. 형부는 변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아치 향을 솔솔 풍기고 다녔는데 다행히 행동에는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눈빛에서는 어떤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느껴지기도 했고. 키가 작고 상체가 전부 문신이야.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 나도 예전에 두 팔뚝이 문신으로 가득 찬 남자를 사귄 적이 있었다. 가는 두 팔뚝이 망친 문신으로 가득 찬 남자. 추위를 많이 타고 애교가 많았던 남자. 전과가 있어도 좋으니 내게 안개꽃 한 다발을 안겨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작은 학원엔 나를 포함해 여자 셋뿐이다. 무척이나 아쉬운 투로 말하고 보니 내가 무척이나 남자를 밝히는 여자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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