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 소설 <3화>
5.
집에 오면 늘 이따위 생각뿐이지만 학원에서는 마치 다른 인간인 양 군다. 그건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었다. 가끔 실수를 할 때도 있었는데 술이 덜 깬 채 출근을 했을 때다. 얼마 전이었다.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 술을 마셨다. 친구는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우리는 베이비박스 운운하며 술을 마셨다. 그러자 그 친구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친구와 나는 계속해서 술을 마셨고 새벽 3시에 헤어져 그의 집엘 찾아갔다. 다행히 그는 와도 좋다고 말했고 나는 행복했다. 가는 도중 그가 문자메시지로 컵라면이나 사오라고 해서 나는 그에게 잘 보이려 컵라면을 종류별로 전부 사갔다. 그가 빨간 국물 라면보다 하얀 국물을 더 좋아해서 나는 시중에 나와 있는 하얀 국물 제품들을 전부 샀고, 혹시 몰라 그의 부엌에서 보았던 빨간 국물 컵라면도 하나 샀다. 우리는 라면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전에도 한번 친구 둘과 술을 마시고 취해 그의 집엘 찾아가서 컵라면을 먹은 적이 있었다. 내가 친구들을 데려간다고 말하자 그는 거절했는데 나는 친구들을 데려갔다. 다음 날 그는 내게 진상이라고 말했는데 그러자 나는 몹시 기분이 좋았었다. 진상인데도 날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단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뭐……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었고 실은 더도 말고 할 것 없이 진상이었던 것 같다.
중간에 술이 떨어지자 그가 이것밖에 안 사왔느냐고 말해 나는 얼른 나가 술을 더 사왔다. 그리고 세 시간쯤 자고 일어나 못생긴 얼굴로 그와 인사 같지도 않은 인사를 하고 학원에 출근을 했다. 신발을 신으면서 내가 택시비를 좀 달라고 말하자 그가 현금은 이천 원뿐이라고 말해서 버스비가 아니라 택시비라니까…… 속에 말을 하고는 이천 원을 받아 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낮게 북소리가 들렸다. 북소리를 들으며 모퉁이를 돌아 편의점에서 로또 이천 원어치를 샀다. 얼마라도 당첨이 된다면 그와의 이별을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2등이 된다면 그에게 몇백만 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1등이 된다면 일억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작은 카페? 아니면 일본식 선술집? 그때 나는 나라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이 참을 수 없이 가난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생각 때문인지 술이 덜 깨서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얼굴이 화끈거려서 택시 창문을 조금 열었다.
택시 안에서 원장에게 아침까지 술을 마셔서 지금 가고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한 시간 늦게 학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내 방에는 열 번 말하면 두 번쯤 말을 듣고 여덟 번쯤 말을 안 듣는 아홉 살 남자아이가 와 있었다. 그림 선생님이 아이들을 서너 명씩 가르치다가 한 명씩 내 방으로 보내면 나는 그 애들과 일대일로 글 수업을 했다. 그림 선생님으로부터 보내진 그 애는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오늘 내가 좀 피곤해서 너를 혼낼 힘이 없으니까 휴대폰 집어넣어.
왜 피곤한데요?
왜.
그냥요.
그냥 왜.
아, 그냥요.
그냥 잠을 못 잤어.
선생님 술 마신 것 같아요.
나는 당황해서 술은 니가 마신 것 같은데?라고 이상하게 받아친 뒤 수업을 안 할 거면 그림방으로 가라고 해버렸다. 그 애는 가지 않고 노트를 폈다. 속으로 나는 혼나는 걸로 하고 정말 가주었으면…… 했는데 그 애는 가지 않았다. 정말 말을 듣지 않는군, 생각하면서 나는 알아볼 수 없는 글씨를 쓰고 있는 그 애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쟤도 커서 누군갈 만나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전과가 생길 수도 있고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고 정치를 할 수도 있고 아이돌 그룹의 리더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런 배를 타지 않는 한 죽지 않고 어른이 되겠지. 모든 사람들처럼 많은 일들을 겪겠지…… 생각하면서 술 깨려고 계속해서 물을 마셨다. 술에 취한 채 출근을 하게 되면 그날 앞 타임에 온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곤 한다. 다행히 오후쯤 되면 정신을 차린다.
그 주 토요일 저녁, 로또 당첨 방송을 보았다. 내가 산 두 게임 중에 한 게임이 오천 원에 당첨되었다. 로또도 그의 돈으로 샀으니 나는 오천 원을 번 셈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그를 잊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천 원 가지고는 이별을 퉁치기에는, 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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