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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 소설 <참고인>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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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 소설 <6화>
12.
잘 자고 일어났는데 자꾸만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의 발목이 보고 싶었다. 보고 싶었지만 나는 하니와 셀프카메라를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내 얼굴만은 도저히 찍을 수가 없는데 하니로 내 얼굴을 삼분의 이쯤 가리고 찍은 사진들은 마음에 들었다. 하니는 예쁘다. 일전에 아버지에게 개와 같은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예쁘고 말이 없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언니는 이상하다. 개가 되고 싶은 나를 사랑하다니……. 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행히 그건 내가 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일이다. 언니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일……. 한쪽에서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아버지는 종종 내게 그래도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개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그래도라는 말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상기하고 그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긍정적으로 살아보라고 한 말인 것 같다. 그래도 네가 개보다 나은 것들을 떠올려보라는. 그럴 때마다 나는
하지만 아버지. 그래도 저는 저에 대해서, 제가 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잖아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더 이상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내가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별다른 말이 없었던 걸 보면?
13.
아버지 말로는 내가 어릴 적엔 또래 친구들보다 늦게까지 시계를 보지 못해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공부나 집안일에 척척이어서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고 한다. 아버지 외에도 몇몇 동네 어른들이 내게 똑똑해 보인다거나 예쁘다고 하기도 했다. 똑똑하다는 것은 아니고 똑똑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저씨들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니 그 눈알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 그 눈 밑에 점도. 얼굴이 점점 검어지는 데 점들이 한몫하는 것 같아 눈 밑에 있는 점을 빼고 싶은데 그게 매력이라고 말했던 아저씨들이 도대체 기억에서 잊히지가 않아서 그것도 못 하고 있다.
오래 산 사람들로부터 종종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날엔 나는 왜 그들 눈에만 예뻐 보이는 걸까, 집에 와서 한참을 생각해보곤 한다. 내 또래가 그렇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학원에 처음 출근한 날 처음 만난 아이 생각이 난다. 패션 디자이너와 모델이 꿈인 아홉 살 여자아이였는데, 나를 잠시 관찰하더니 내게 예쁘다고 말했다. 내가 어디가 예쁘냐고 묻자 그 애는 눈이요, 하고 대답했다. 그 애는 지금도 종종 향수 뿌렸어요? 머리가 많이 길었네요? 같은 말들을 하곤 한다. 그 애는 착한 것 같다. 정말이지 나는 나지만 나조차도 이런 나를 서른한 살이라고 봐주기가 힘들다. 나라도 좀 나를 인정해줄 순 없을까! 8년 전쯤 쓴 글에 등장하는 상처받은 화자가 샤워 중에 자기 자신을 껴안으면서 ‘나는 착하다’라고 진술한 적이 있는데 존경하는 소설가이자 교수가 그 다섯 글자를 칭찬해준 적이 있다. 그 교수를 생각하자 부끄럽고 민망해진다. 지금의 나는 욕이나 먹겠지.
14.
얼마 전 서른한 살을 맞아 사주를 봤을 때도 착하게 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군데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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