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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4 10:07 수정 : 2014.08.19 10:09

이주란 소설 <9화>



22.

주연아. 언니가 미안해. 잘 지내는 거지? 혹시 너도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수신 취소를 할 수 있었다면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텐데.

23.

언니에게 오랜만에 답장을 보냈다.

언니. 나 지금은 언니가 있는 곳 근처에도 가고 싶지가 않아. 그 이상한 비유도 마음에 안 들어. 당분간 임진강의 ㅇ자도 꺼내지 말아줘. 궁금하지가…… 않다는 말이야. 그러니 내게 잘 지내느냐고도 묻지 말아줘. 이런 내가 잘 지낼 리가 없잖아!

24.

25.

26.

27.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그가 잡히지 않길 바라면서 그를 잡을 수 없었고 계속 학원엘 나갔다. 내가 똥을 닦아준 아이가 다시 학원에 나오기 시작했고 몸무게가 7킬로그램이나 빠졌지만 여전히 뚱뚱했고 대학교수의 부친상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지 못했고 몇 없는 친구들과 싸웠다. 나는 사후 장기와 조직기증 서류에 서명했고 매일 세 시간씩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다가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돌아와서는 빨래를 돌려놓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 애는 돌아왔지만 학원생은 점점 줄었고 친구들은 이사를 하거나 낙태를 했고 나는 전보다 가난해졌다. 그 몇 개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뭔가 이상했고 웃을 일은 없었다. 나는 시간이 많았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고 만날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나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했으나 알아낸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과 그렇다면 나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무기력해졌고 내다보는 앞날이 짧았다. 다음 달엔 뭘 해야지, 올해가 가기 전에 뭘 해야지 하는 것들도 없었다. 그러자 전처럼 불안하지도 않았다. 성숙한 인간은 타인의 아픔이나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고 말한 철학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하면 그저 조금 안타까워하고 말 일을 나는……

28.

주연아.

주연아까지 읽었을 때 나는 울었다. 일단 운 건 어쩔 수 없고 그만 울고 싶었는데 계속 울었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도 어쩐지 그만 울고 싶었는데 오래 울었다. 내게 조카가 생겼다는 언니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야까지 읽고 나는 더 크게 울었다. 하니가 있어서 나는 더 크게 울었다.

29.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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