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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차 본사 앞에서 만난 해고노동자 장영규(44)씨는 본인 명의의 통장이 없다. 통장을 만들면 가압류를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손배 가압류가 무엇인지 감이 잘 안 왔는데 지금은 분명히 안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무서운 존재가 손배 가압류”라고 말했다. 평택/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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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손잡고
손배 가압류의 현장1. 쌍용차 장영규
▶ 언론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주목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26명이 사망하기 전에 이들의 처지를 알고 손을 내밀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이제나마 찾아 나섭니다. 대상은 손해배상 가압류로 어려움을 겪어온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을 만나 손배 가압류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극한까지 내모는지를 듣고자 합니다. <한겨레>-손잡고 공동 기획은 매주 연재됩니다.
“이틀 후면 급여를 받는 날이다. 6개월 넘게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주기 바란다.”(2003년 1월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의 유서)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잘못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구속에 해고까지….”(2003년 10월17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씨의 유서)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원.”(2012년 12월21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씨의 유서)
회사·정부에 47억 배상 판결
5년간 퇴직금·월급·부동산
가압류 시달리며 신용불량자로
가족 깨지고 양육비도 못 감당
“은행에서 돈 빌리기 어려우니
주변에 몇몇 어려운 분들이
연이자 30% 넘는 대출을
불가피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동료 95명과 함께 긴급생계비 신청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본사 앞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노동자 장영규(44)씨는 오랜만에 생긴 일감을 포기했다고 했다. “요즘은 건설 경기가 나빠서 일감도 별로 없는데, 오늘 5일 만에 일 나갈 기회를 포기했어요. 인터뷰와 시간이 겹쳐서요.” 2009년 쌍용차 노조가 옥쇄파업을 할 당시 노조 대외협력실장을 맡았던 그는 현재 건설현장을 전전하는 일용직 노동자다. 쌍용차 노동자 2646명에게 정리해고가 통보된 날이 2009년 4월8일. 지난 5년간 해고자와 가족 26명이 우울증·질병 등으로 사망했지만 변하지 않은 고통의 원인이 있다. 바로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금액과 가압류다. 현재 쌍용차 해고자, 복직자들에게 걸린 손해배상 금액은 158억원에 이른다. 파업으로 인해 쌍용차에 보험금을 지급한 메리츠화재가 보험금 전액인 110억원을 노동자한테서 돌려받겠다고 구상권을 행사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이미 내려진 판결도 있다. 지난해 12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은 쌍용차 해고자와 복직자 139명에게 회사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4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파업에 따른 손실과 다친 경찰들의 치료비 등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애초 회사와 정부의 청구금액은 192억원에 달했으나, 법원은 이 중 47억원을 인정했다. 1심 판결이 지난해 12월 나왔지만, 가압류는 2009년 파업 직후부터 집행돼 급여, 부동산, 퇴직금 등 28억9000만원이 묶여 있다. 가압류는 노동자들의 삶을 뿌리부터 파괴한 주범이었다. 2009년 8월 쌍용차 파업이 끝나자, 장씨에게 남겨진 것은 집과 퇴직금에 걸린 가압류 통보였다. “저는 회사와 대한민국 정부 모두에 손해배상을 청구받았습니다. 퇴직금 2000만원과 집이 가압류로 걸렸죠.” 그는 주택과 자녀들 교육비, 생활비 등의 마련을 위해 이미 1억원 정도의 빚을 졌지만, 정리해고를 당하자 이자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2009년 말 그는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다. 정리해고 이후 2년간 노조 간부를 맡은 그의 수입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지원하는 최저생계비 97만원이 전부였다. 이 돈으론 그동안 빌린 돈의 이자와 4인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2011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그해 6월8일, 맡고 있던 모든 역할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동료들에게 밝혔다. 정리해고가 법적 효력을 얻은 날로부터 정확히 2년 뒤였다. “생활이 안되니까, 애들 엄마와 사이가 너무 안 좋아져서 더 이상 노조활동을 할 수가 없었어요. 2009년 파업 당시엔 아내가 아이들 데리고 회사로 찾아와 응원도 하곤 했죠. 하지만 법원에서 날아온 가압류 통보장을 보고서 아내와 자녀들이 많이 상처를 받았고, 그런데도 제가 노조활동 하느라 가족들 잘 보살피지 못하니 사이가 더 안 좋아진 거죠. 특히 딸이 아빠를 많이 미워하는데, 그게 마음에 많이 걸리네요.” 그나마 장씨가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된 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치유공동체 ‘와락’에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와 한 상담 덕분이다. 그는 “빚이 많다거나, 생활이 어렵다거나, 가족과 사이가 나빠졌다는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창피한 일로 여겨 속으로 담아두기만 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매일매일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활동을 그만둔 이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15년간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일해온 그가 새 직장을 찾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고정된 급여를 받게 되면 또 가압류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압류 걸린 동지들 대부분 일용직을 전전합니다. 일자리도 마땅치 않고, 그나마 현금으로 일당을 받기 때문이죠. 요즘은 건설 경기가 안 좋아 일감도 별로 없고,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서 경쟁도 꽤 치열합니다.” 그런 그가 손배 가압류에 걸린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을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파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 좋잖아요. 노동자가 하는 행위를 무조건 불법으로 보는 편견도 많고요. 몇몇 활동가들이나 우리를 지지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노란봉투 캠페인이 일반 시민들에게서 호응을 얻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노란봉투로 모인 기금을 배분하는 사업을 하는 ‘손잡고’는 지난 5월1일 손배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긴급생계비(1인당 최대 490만원)를 지원하겠다고 공고를 내어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장씨는 다른 쌍용차 해고자·복직자 95명과 신청서를 냈다. 나름의 심사를 거쳐 장씨가 받게 될 금액은 400만원 정도다. 그는 이 돈을 어떻게 쓰려고 할까. “이혼하고서 애들 양육비로 매달 50만원씩 주기로 했지만 그것도 버거워서 못 주기도 했어요. 노란봉투에서 받은 돈으로 애들 양육비와 용돈 좀 주고 옷도 사주고 싶어요. 고3인 딸이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걸어온대요. 차비를 아낀다고 그러는 모양이에요. 딸이 집에 돈이 없는 것을 알고 대학도 안 간다는 것 같던데, 그동안 납입한 국민연금이라도 미리 받아서 학자금으로 좀 쓰고 싶어요.” 1억원 가압류…말 잘 들으란 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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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손해배상 청구 사업장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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