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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06 10:15 수정 : 2014.08.19 10:07

백수린 소설 <8화>



제는 미영의 심장에 귀를 갖다 대었다. 봉긋하고 탐스럽던 미영의 가슴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콧구멍 아래 손가락을 대보았으나 더운 김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죽은 거란 말인가? 제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미영에게 질병이라도 있었던 걸까? 재수 없게, 비소에 민감히 반응하는 체질이었던 걸까? 제는 미영의 뺨을 연거푸 내리쳤다. 어디선가 본 것을 기억해내, 제는 미영의 입을 벌리고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그렇지만 미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말 죽은 거구나. 제는 이마의 흥건한 땀을 훔쳤다. 미영의 죽음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임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이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윤이 살인범으로 몰린다면, 아니 자신이 공범으로 몰린다면, 벌어질 일들이 두서없이 제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미영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제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준오는, 준오는 자?”

제가 윤을 향해 다급히 물었다.

“모르지.”

윤이 대답했다.

“그렇게 멍청히 서 있지 말고 가서 좀 들여다봐.”

제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다그쳤다. 윤은 넋이 나간 얼굴로, 준오와 미영의 방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곯아떨어져 있는 것 같아.”

제는 미영을 내려다보았다. 미영의 얼굴은 석고로 만든 가면처럼 하얗게 굳어 있었다. 제는 충동적으로 미영을 둘러업었다.

“어떻게 하려는 거야?”

윤이 조그만 목소리로, 그렇지만 날카로운 톤으로 말했다.

“물에 흘려버려야겠어.”

생각지도 않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랬다. 그러자 처음부터 계획하기라도 한 듯이 물에 흘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제를 사로잡았다. 온 도시는 물에 잠겨 있었다. 사람들이 깨기 전에 바다로 가서 미영을 던져버리고 오면 괜찮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았듯이 다리에 무거운 것을 묶어서 던져버리면 된다. 죽은 것이든, 기절을 한 것이든, 비소 때문이라면 바다에 던지는 순간 미영은 모든 비밀과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물은 당분간 계속 불어날 예정이었다. 해수면이 다시 낮아지는 봄이 오면 미영의 몸은 이미 썩어 없어져 있을 것이었다. 미영의 퉁퉁 불은 몸은 물고기에 의해 살점이 뜯기고 미생물에 의해 천천히 분해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미영의 시체를 찾지 못할 것이고, 미영은 그저 실종된 것으로 처리될 것이었다.

“넌 뭐든, 매달아버릴 무거운 걸 좀 찾아봐.”

제가 윤을 향해 조그맣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집에 무거운 게 어딨어?”

윤이 대꾸했다. 제는 화가 치밀었다. 쓸데없이 윤이 비소 따위를 물에 타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였다. 그렇지만 윤과 실랑이를 할 시간은 없었다. 제가 미영을 업고 복도를 빠져나오는데, 어디선가 또다시 사이렌 소리가 울려왔다. 집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공기 중에는 물비린내가 났다. 일단 얼른 밖으로 나가야 했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잠들어 있는 준오에게 이 장면을 들켜서는 안 됐다. 그런데 준오가 떠오르자 미영이 사라진 것을 알면 준오가 가만히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사실 독을 물에 탈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므로 준오가 살인을 의심할 이유는 없을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준오는 부부를 의심할지도 몰랐다. 경찰에 신고할지도 몰랐다. 경찰에 신고하면 불법으로 민박을 운영했던 사실이 들통 날 거였다. 윤이 보리차에 초록색 물감을 타왔다는 사실이 발각될 수도 있었다. 아, 준오도 같이 죽여버려야 하는 것일까. 사이렌 소리가 또다시 시끄럽게 울려댔다. 죽여버려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제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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