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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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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소설 <1화>
바람이 분다.
편의점 통유리 앞에 서서 거리를 바라본다. 평소 같으면 사무실에 출근해서 자판기 커피와 함께 여유를 즐기고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출근도, 커피 한 잔의 여유도, 휘-잉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어느덧 8시 50분, 출근시간 10분 전이다. 전화를 걸까? 말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전화를 걸지 않으면 무단결근이다. 시말서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불성실하다느니, 책임감이 없다느니,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번 찍히면 회사생활이 힘들어진다.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도 만회가 되지 않는다. 따돌림을 당하고, 진급에서 누락되고……. 그러던 어느 날 상사가 조용히 부른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 눈앞이 캄캄해진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어서 출근을 못 했다고 말하는 순간 자질을 의심당한다. 근성이 문제라느니, 직장인으로서의 기본소양이 안 됐다느니, 막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내일쯤, 상사가 조용히 부른다. 우리 회사에 자네 같은 사람은 필요 없네.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불효막심한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차가 막힌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지하철로 출퇴근한다는 기밀을 유지하지 못했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릴수록 생각만 많아진다. 답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자꾸 시간만 흘러간다.
휘-잉, 계속 바람이 분다.
출근길도 어느덧 끝물이다. 몇 안 되는 지각생들이 바람과 맞서 싸우며 몸부림을 치고 있다. 통유리라는 네모난 화폭이 그들의 비장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 밑에 제목도 붙어 있다. ‘계산하고 드세요.’ 코끝이 찡해진다. 왠지 모르게 절묘한 제목이다. 회사에 출근하는 건 계산을 하기 위해서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다. 게다가 지금은 시련과 고난을 상징하는 바람까지 불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 잔뜩 웅크린 어깨, 정신없이 바람에 날리는 넥타이와 기성복. 그림이 된다. ‘계산하고 드세요’ 제목과 함께 감상하면 그림의 감동은 배가된다.
여전히 바람이 분다.
출근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지나버렸다. 사무실에서 전화가 올까 봐 휴대전화 배터리는 한 시간 전에 분리해두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신문이나 한 부 사서 볼까? 이런 여유까지 생겼다.
그래서 스포츠 신문을 샀다. 한 자 한 자 빼놓지 않고 정독했다. 관심기사는 두 번 세 번 재독했다. 광고도 읽었다. 건강보조식품 광고가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낱말풀이에도 도전해보았다. 스티브와 제인이 주고받는 생활영어를 통해서 지구촌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성큼,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숨은그림찾기는 관찰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호미나 오리 같은 것들을 찾으면서 느끼는 희열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오늘의 운세를 펼쳤다. 뜻밖의 귀인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카운터 뒤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는 남자 알바생을 쓱 한번 훑어봤다. 귀인 같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저기요…….”
손님은 없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 같지도 않았다. 신문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카운터 뒤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던 남자 알바생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
대답을 하자마자 뜻밖의 질문이 날아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저씨, 요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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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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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2012년 장편소설《굿바이 동물원》으로 제17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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