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2화>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요리사나 요실금을.
“아저씨 요원 맞죠?”
하지만 아니었다. 심심해서 농담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목소리도 표정도 너무 진지했다. 아까 보고 있던 그게 첩보물이었나? 만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것 같았다. 활활,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기서 매일 사람 상대하는 게 일이거든요. 제 눈은 못 속여요.”
무시할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다. 이 몸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알바생의 자유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몇 푼 안 되는 시급 때문에, 그러다 보게 된 만화책 때문에, 비록 아는 동생도 아니고 귀인도 아니지만 새파랗게 젊은 인생 하나가 망가지는 건 내 양심이 용서할 수 없었다. 알바생에게 현실은 만화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초라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다.
“요원 아닌데요. 대린데요.”
이 몸은 평범한 회사원이고, 여기서 좀 오래 있긴 했지만 출근길에 잠깐 쉬고 있는 것뿐이라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하지만 알바생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 표정이었다.
“에이, 왜 이러세요.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어려운 가정형편, 몇 푼 안 되는 시급, 그러다 보게 된 만화책,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 양심이 용서하든 말든 알바생의 현실감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요원이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져요.”
알바생의 요점은 간단했다. 누가 출근길에 잠깐 쉬려고 편의점에 들어와서 두 시간씩이나 죽치고 있느냐는 거였다. 그런 회사원이 어디 있냐, 지나가던 개가 웃는다, 시치미 떼도 소용없다, 아저씨가 요원이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이상이 알바생의 불도저식 논리였다. 내 쪽에서 요원들도 편의점에서 두 시간씩이나 죽칠 만큼 한가한 사람들이 아닐 거라고 반박하자, 이번에도 알바생은 그거야 누군가의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서거나 반대로 누군가를 미행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냐며 계속 밀어붙인다.
“어느 쪽이에요?”
어느 쪽도 아니다. 하지만 알바생의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돌고 있었다. 돌고 있는 건 지구라고 아무리 말해도 믿을 것 같지 않았다. 비밀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냥 요원인 걸로 해? 알바생을 따돌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내 몸 하나 편하자고 알바생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제가요…….”
출근 중이었다. 그런데 바람이 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몸이 왜 편의점에 들어와서 두 시간씩이나 죽치게 됐냐면……. 나는 그렇게 된 이유를 알바생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정말이요?”
“정말입니다.”
카운터 뒤의 알바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겠지. 갑자기 지구가 돌기 시작했으니까. 뭐, 믿지 않아도 좋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요원 맞네.”
그렇게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걸 보면 요원이 틀림없단다. 내 쪽에서 요원들도 그렇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 거라고 반박하자, 알바생은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면 그게 정치인이지 요원이겠냐며 이상하게 설득력 있는 논리로 밀어붙인다. 어느 기관 소속이에요? 이렇게까지 현실을 외면하면 도와줄 방법이 없다. 아저씨랑 CIA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제가 이길 걸요. 와! 미래가 어두운 알바생을 뒤로하고 다시 통유리 밖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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