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3화>
거리에는 계속 바람이 불고, 이제 지각생들도 안 보이고, 신문지 몇 장이 정신 사납게 날아다니고, 검은 비닐봉지가 열기구처럼 둥둥 하늘을 떠다닌다. 과자 봉지와 사과 박스도 보인다. 다 찌그러진 밥그릇 하나가 어디서 날아와 몸을 굴리며 지나간다. 그 뒤를 개 한 마리가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 밥그릇의 주인인 모양이다. 멍멍, 개 짖는 소리가 애달프게 멀어진다. 종이 쇼핑백도 제트기처럼 휙. 마법의 양탄자처럼 팔랑팔랑 저쪽에서 날아오는 건 누구 집 빨랫줄에 걸려 있던 가정용 수건……. 계속해서 녹색 추리닝으로 아래위를 통일한 채 한 줌밖에 안 되는 흰머리를 맹렬하게 날리며 이쪽을 향해 자유비행을 하고 있는 저 물체는? 처음에는 영감님 모양의 풍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누가 영감님 모양의 풍선을? 대체 어떤 목적으로?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는 동안 통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영감님과 나의 시선이 마주친다. 잘 만들었네. 이마에 새겨진 주름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표정도 살아 있다. 물에는 빠졌지, 손에 잡히는 건 지푸라기뿐이지, 그렇게 된 사람의 절박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뭐라고 말씀도 하신다. 통유리 너머에서 뻐끔뻐끔, 영감님의 입이 네 번 열렸다 닫힌다. 처절한 절규가 통유리를 뚫고, 작지만 확실하게 들려온다.
“사람 살려!”
사람은 문어가 아니니까 당연히 빨판 같은 건 없다. 영감님이 두 손바닥으로 통유리 바깥쪽을 긁으며 획 하고 날아간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통유리에 남은 건 가로로 두 줄 죽 그어진 영감님의 손자국뿐, 저쪽으로 날아간 영감님의 모습은 이제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사람 살려!”
분명히 그렇게 외치며 절규하는 걸 들었다.
“저쪽으로 영감님 한 분이 날아가셨는데, 못 봤어요?”
바로 알바생에게 확인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총격전입니까?”
본 사람도 나밖에 없다. 통유리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영감님이 날아간 쪽을 바라본다. 저 끝에서 녹색 물체가 펄럭이는 게 살짝 보인다. 두 걸음쯤 옆으로 이동하면 훨씬 멀리까지 볼 수 있다. 역시 영감님이다. 위치는 차도와 인도 사이에 설치된 펜스. 다행히 거기에 발이 걸린 모양이다. 바람 부는 날 빨랫줄에 걸린 기저귀처럼 팔랑팔랑, 정신없이 나부낀다. 구조를 요청할 시간이 없다. 구조를 요청해도, 영감님 한 분이 펜스에 걸려 팔랑거리고 있다고 하면 119는 출동하지 않는다.
우선 편의점에서 파는 가장 무거운 걸 산다. 2리터짜리 생수다. 생수 두 통을 양쪽 겨드랑이에 하나씩 끼고 편의점 문을 연다. 휘-잉, 강한 바람이 얼굴을 후려친다. 머리도 순식간에 헝클어진다. 다시 한번 영감님의 위치를 확인한다. 10미터쯤 저쪽이다. 아직 거기에 걸려 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몸을 틀자마자 바람이 등을 민다. 한 걸음 두 걸음, 전진하는 게 아니라 멱살을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기분이다. 꼬옥, 생수 통을 끌어안는다. 생수 통만 떨어트리지 않으면 된다. 물론 바람이 더 강해지면 그때는 생수 두 통도 무용지물, 바람이 부는 대로 팔랑팔랑, 서쪽 마녀가 사는 오즈 같은 곳으로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가려면 빨간 구두가 필요해요. 얘야, 꺼지렴. 하지만 영감님을 구해드리고 싶다. 나를 바라보던 애절한 눈길, 눈에 선하다. 사람 살려, 처절하게 외치던 절규,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통유리에 가로로 두 줄 죽 그어져 있던 손자국, 잊을 수 없다. 힘을 내자고 다짐해본다. 영감님 포기하시면 안 돼요, 펜스에 걸려 있는 영감님에게도 마음의 응원을 보내본다.
여기서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리모컨에는 되감기 버튼이 있다. 그걸 눌러보자. 화면이 뒤로 돌아간다. 그렇게 5분쯤 전으로 화면을 돌리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실은 제가요…….”
이 부분에서 정지. 장소는 당연히 편의점 안이다. 카운터 뒤의 알바생이 통유리 앞에 서 있는 이 몸을 향해 뜨거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알바생은 나를 요원이라고 생각한다. 우주가 아직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몸무게가 없어요.”
“뭐가 없어요?”
무슨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예요? 알바생이 그런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몸무게요. 제가 체중이 0킬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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