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4화>
체중계가 필요 없는 몸이다. 체중계는 말 그대로 체중을 수치화하는 기계다. 그러니까 수치화할 체중이 없는 이 몸에게 체중계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다. 그래도 집에 가면 몇 개나 되는 체중계가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다. 가끔 올라가 몸무게를 잰다. 0킬로그램……. 체중을 확인하면 한숨만 나오고 마음만 어두워진다. 현실을 외면한 채 어디론가 멀리 도망치고 싶은 생각만 든다.
“그래서 여기 있는 거예요. 지금 나가면 날아가버리거든요.”
몸무게 제로의 인간이다.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다. 특히 바람에 약하다. 일기예보를 매일 빼놓지 않고 시청한다. 강풍주의보가 내린 날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태풍이 상륙하면 회사에 전화해서 몸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는 흉기다. 약풍으로 틀어도 몸무게 제로의 이 몸은 떼굴떼굴 순식간에 방구석까지 날아가버린다.
“농담이죠?”
“저도 농담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다행히 몸무게만 제로다.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구두까지 신으면 제법 멀쩡한 일반인처럼 보인다. 그래서 남들처럼 회사에도 다니고 가끔은 사람들도 만난다.
“하지만 이렇게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가버릴지 몰라요.”
확실한 체중을 가지고 땅바닥에 발을 착 붙이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외로워진다. 나도 더울 땐 선풍기를 틀고 싶다. 매일 일기예보를 시청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한때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어쩜, 아름답기도 해라, 감탄하던 시절도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 무리를 보며 낭만에 젖기도 했고,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서 남몰래 간직해온 소원을 빌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밤하늘이 무섭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처럼 캄캄하고 막막해 보인다. 대기권을 뚫고 날아가면 바로 우주미아가 된다. 두 번 다시는 아름다운 고향별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 예전처럼 다시 별 무리를 세면서 낭만에 젖어보고 싶다. 보름달 아래서 남몰래 간직해온 소원을 빌어보고 싶다.
“정말이요?”
묻길래,
“정말입니다.”
대답해 줬더니,
“요원 맞네.”
보람 없는 대답만 돌아왔더랬다.
그런 이유로 생수 두 통을 샀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펜스에 걸려 있는 영감님을 못 본 체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문을 열자마자 강한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지만 용기를 냈다. 멱살을 잡힌 채 질질 끌려가고 있지만 구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영감님도 포기하시면 안 돼요.
조금만 더 가면 영감님이 계신 곳이다. 우선 펜스를 잡고 몸을 고정시킨다. 그 상태로 한 걸음씩 천천히 전진한다. 여기서는 바람에 펄럭이는 녹색 추리닝밖에 보이지 않는다. 의식을 잃은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안부를 물어본다.
“영감님, 괜찮으세요?”
“응, 나는 괜찮아.”
나를 향해 웃고 있다. 손을 흔들며 인사까지 한다. 괜찮은 것 같다.
“만나서 반가워.”
바람은 불지, 머리는 엉망이지, 바람에 휘날리는 넥타이가 아까부터 계속 찰싹찰싹 뺨을 후려치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만나서 반가운 상황이 절대 아니다. 웃으면서 인사할 마음의 여유도 없다.
“영감님, 이거 받으세요.”
우선 생수 한 통을 영감님에게 건넨다. 생수 통을 안자마자 영감님의 상체가 툭 길바닥에 떨어진다.
“발이 끼어버렸어. 빼줘.”
자세히 보니 발이 끼어 있는 게 아니라, 펜스 나사 끝에 바지 밑단이 걸려 있다. 아니었으면 지금쯤 성층권 어드메에서 둥둥 떠다니고 계실지도 모른다. 정말 운이 좋은 영감님이다.
일단 나사에 걸린 바지를 푼다. 다음 순간, 생수 통을 품에 안은 영감님이 길바닥 저쪽으로 질질 끌려간다. 바람이 너무 세다. 생수 한 통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강풍이다.
“야, 막 풀면 어떡해. 구해줘.”
생수 통 덕분에 날아가지는 않았다.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지만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서행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스마일, 웃을 수 있다니,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영감님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영감님.”
스리, 투, 원, 제로. 펜스에서 손을 놓는다.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을 추진력 삼아 이 몸은 발사대를 떠나는 우주선처럼 전방을 향해 출격한다. 저 앞에 영감님 우주선이 있다. 도킹까지는 앞으로 5미터. 빠르게 거리가 좁혀진다. 실패하면 아름다운 고향별 지구와도 영원히 안녕이다. 바로 우주미아 된다. 3미터, 2미터, 1미터……. 영감님 우주선을 향해 손을 뻗는다. 영감님 우주선도 손을 내민다. 극적인 순간이다. 도킹 성공!
한 통하고 두 통은 무게감이나 안정감부터가 다르다. 먼저 영감님을 일으켜드린다. 그런 다음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는다.
“댁이 어디세요?”
우선 영감님을 댁까지 모셔다드릴 생각이다. 출근은 그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저기.”
영감님이 손가락으로 저 앞을 가리킨다. 저기 어디요?
“저어기.”
저기가 아니라 저어기다. 저기보다 굉장히 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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