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6화>
바람이 잦아든 건 정오쯤이었다. 영감님의 배웅을 받으며 건물 1층까지 내려왔다.
“안녕히 계세요.”
“조심해서 가.”
그 길로 곧장 회사로 향했다. 가까운 정류장에서 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중간에 한 번 환승했다.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12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빠져나간 사무실에는 비수기의 해수욕장처럼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일단 자리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업무 파일을 띄우고,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꾸 마음만 무거워지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너 뭐 하는 인간이야? 회사가 동네 놀이턴 줄 알아? 삿대질과 함께 막말이 날아올 걸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 역시 도망칠까? 하지만 어디로? 꽁꽁 묶인 채 널빤지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복도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밀크커피 한 잔을 뽑았다. 그 커피를 들고 비상구로 나갔다. 밑에서 세 번째 계단, 거기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거렸다. 아, 달다! 왠지 모르게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달짝지근한 자판기 커피가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영감님, 대체 뭐 하는 분이세요?”
스마일, 웃고 있던 영감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 눈에는 내가 뭐 하는 사람처럼 보여?”
사기꾼처럼 보였지만 아까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무궁화 액자 사진을 보며 물었다.
“영감님 사진이에요?”
“응, 나야. 사진보다 실물이 낫지?”
실물이 하는 말 따위 무시한 채, 계속 사진을 보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저게 공중부양이죠?”
“보면 몰라.”
“어떻게 하신 거예요?”
몸무게 제로의 인간이기 때문에 뜨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일단 뜨면 저 멀리 날아가버린다. 어른 키 높이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는 묘기는 아무래도 부리기 힘들다.
“낚싯줄을 잡고 있으면 돼.”
자세히 보니 양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 처음에는 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주먹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사진 찍을 땐 안 보이거든. 하지만 이건 비밀.”
약속을 하라며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새끼손가락까지 걸었다. 확실하게 지장도 찍어, 엄지손가락으로 도장도 찍었다.
“옛날에는 여기서 기체조나 단전호흡 같은 걸 가르쳤거든. 저런 사진이 한 장쯤 있어야 사람들이 등록을 해. 그때 찍어서 걸어둔 거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둥굴레 차를 마셨다.
“아까는 정말 죽다 살아났어. 구해줘서 고마워.”
“뭘요…….”
영감님과 악수도 나눴다. 덜컹덜컹, 밖에서 몰아치는 강풍이 헐렁하게 닫혀 있는 창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네.”
“그러게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차는 어느새 다 마셨지, 단둘이 마주 앉은 영감님과 취미생활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금방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뜨거운 물 남았는데, 둥굴레 차 한 잔 더 할래?”
“그럴까요…….”
그래서 둥굴레 차 티백을 넣다 뺐다, 우려내고 있는 영감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셨어요?”
“뭐가?”
“몸무게요.”
아, 몸무게……. 순간 영감님의 눈빛이 먼 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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