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7화>
“그게……. 정확히 1980년이니까……. 벌써 삼십몇 년이 흘렀구먼. 세월 참 빨라. 바로 어제 일 같은데 말이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세월처럼 무심한 게 없어, 폭 한숨을 쉬고 계신 영감님이 자질구레한 옛날이야기를 늘어놓을까 봐 다른 걸 물어보기로 했다.
“이유가 뭘까요?”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도 많이 했다. 처음에는 외계인이 의심스러웠다.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까지 왔다. 생체실험을 위해 대상을 물색하던 중 이 몸을 발견했다. 바로 광선총을 발사했다……. 그런 시나리오가 죽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서 한동안은 개인의 사생활 따위 요만큼도 존중해주지 않는 외계인 과학자들을 원망하며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병이 아닐까,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긴 그런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
여기가 국회도 아니고, 말이 너무 애매했다.
“영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나, 나는 일단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
영감님 생각은 그랬다. 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몸무게 제로는 불치병일지도 몰라, 외계인 과학자들을 용서한 이후로는 죽 그렇게 생각해왔다.
“병이라는 게 세 종류거든. 물리적인 병, 정신적인 병, 그리고 생물학적인 병. 그런데 몸무게가 없는 건 그런 병이 아니거든.”
그렇게까지 분석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왠지 차트를 보면서 전문의의 소견을 경청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볼 때 우리가 이렇게 된 건…….”
귀를 쫑긋 세우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영감님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꼴깍,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놈의 사회 때문이야.”
그럼 이 몸을 향해 광선총을 발사한 범인이 외계인 과학자가 아니고 대한민국 사회였다는 말인가?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에 영감님의 이야기는 말로만 듣던 전설의 땅, 삼천포로 접어들고 있었다.
“사회라는 게 그래. 거대기계 같은 거거든. 사람들은 거기에 들어간 톱니바퀴 같은 거고.”
“그게 몸무게랑…….”
무슨 상관입니까? 라는 뒷말이 남아 있었지만 영감님이 손사래를 치며 말을 막는 바람에 끼익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내 말 더 들어봐.”
혼자서 적적하게 지내셨는지 입이 열리자 통제가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만 해도 그렇잖아. 사회라는 거대기계를 돌리는 톱니바퀴들이 무려 오천만 개나 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어떤 톱니바퀴들은 남들 다 자는 야심한 시간까지 바쁘게 돌아간다고. 그런데 왜 도는지 이유를 몰라. 그냥 남들이 도니까, 가만히 있으면 이상하니까,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취직하기 위해서 영어단어도 외우고, 남들처럼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이 하면서 계속 도는 거야. 아무리 사람이 사회적인 동물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는 거야. 망가지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내 말이 틀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재 위치는 삼천포. 요점이 없다.
“요점이 왜 없어? 이해력이 달리는 거겠지. 내가 딱 보니까 암기과목은 되는데 국영수가 안 되는 스타일이야. 성적이 안 나오니까 대학도 수도권 밖에 있는 그저 그런 대학. 졸업을 해도 스펙이 안 돼. 백수생활을 길게 했어. 지금 다니는 직장도 별 볼 일 없고. 대리까지가 한계야. 과장은 힘들겠어. 쥐꼬리만 한 월급은 들어오자마자 빠져나가.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능력도 없어. 결혼은 꿈도 못 꿔. 쯔, 쯔, 쯔…….”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를 펴드려도 용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성공하실 것 같았다. 저절로 표정이 어두워지고 고개가 떨어졌다. 바람과 함께 멀리멀리 사라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없는 부모 만나서 공부까지 못해봐. 뻔하잖아. 급행열차 타고 순식간에 밑바닥까지 떨어져요. 하지만 대한민국에 그런 밑바닥 인생이 어디 한두 명이야? 너만 그런 게 아니니까 너무 우울해하지 마.”
동료가 아무리 많아도 밑바닥 인생은 밑바닥 인생이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끼리 뭉쳐서 모임을 하나 만들었거든. 너만 오케이 하면 끼워줄 수도 있는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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