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1화>
고양이 집회라는 게 있다. 시간이 되면 일단 모인다. 그리고 모였으면 됐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흩어진다. 영감님이 말한 모임도 그런 고양이 집회가 아닐까? 한 점 실익도 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몸만 피곤해지는 그런 모임 말이다.
하지만 이왕 나왔으니까, 한 걸음. 휴일이라 할 일도 없고, 또 한 걸음. 어떻게 생긴 인간들인지 얼굴이나 한번 볼까? 다시 한 걸음.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낙오자 집단, 붕들의 아지트 앞이다.
이제는 쉬고 싶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건물 안으로 한 걸음, 용기를 짜내서 들어가본다. 벌써 피부에 와 닿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지상 1층인데 B3나 B4쯤 되는 지하실 같다. 공기가 차다. 눅눅한 곰팡내도 난다. 싸하게 콧속으로 파고드는 이건 시멘트 냄새. 조도도 낮다. 어디서 건물이 막고 있는지 일조량 자체가 거의 없다. 인공조명은, 기대하지 말자. 재개발을 기다리는 버려진 건물 같은 분위기다.
당연히 엘리베이터 같은 건 없다. 비로봉이나 노고단쯤 되는 곳에 가면 체험할 수 있는 가파른 계단뿐이다. 로프나 안전장치도 없다. 세상 어디에도 만만한 일은 없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한 칸 한 칸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런 계단이 총 5층이나 된다. 2층까지 올라가면 세상의 쓴맛을 알게 된다. 3층에서는 단맛도 좀 본다. 단맛 쓴맛 다 보고 4층에 도착하면, 장하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후회는 없다,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5층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조금 알게 된다. 인생이 뭔지.
3층까지 올라왔다. 인생의 쓴맛은 충분히 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단맛 같은 건 없었다. 헉, 헉, 숨이 턱까지 찬다. 양쪽 벽에 손을 짚고 3층과 4층 중간에 간신히 서 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노랗게 뜬다. 땀에 젖은 머리가 미역 줄기처럼 이마에 붙어 있다. 더는 무리야, 자꾸 약한 생각만 든다.
그때 계단 밑에서 발소리가 올라온다. 구조 요청은 하지 않았지만, 119 대원이라면 대환영이다. 하지만 저승사자면 어쩌지? 5층에 가시면 아주 오래 사신 영감님 한 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맙소이다. 무사히 따돌릴 수 있을까? 어느새 발소리가 계단 코너를 돈다. 다행히 교복을 입고 있는 여고생이다. 손에 네모난 상자 같은 걸 들고 있다. 거기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아저씨, 길 좀 비켜주세요.”
어려운 부탁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체력이 바닥나버렸다. 이렇게라도 쉬지 않으면 몸이 부서져버릴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본다.
“학생……. 위에 볼일이 있나 봐?”
“배달 왔단 말이에요……. 아저씨, 지나가게 해주세요.”
위에서 누가 뭘 시킨 모양이다.
“교복을 입고 배달을 해?”
“사장 새끼가 시켜서 하는 거란 말이에요.”
“악덕 사장이네. 신고해버려.”
“안 돼요. 우리 아빠예요.”
아, 그러니……. 더는 붙일 말이 없었다.
“식으면 안 된단 말이에요.”
계단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여고생이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본다. 아, 지나가게 해주고파라. 계단 중간에 설치된 바리케이드가 된 기분이다.
“그냥 지나가면 안 될까? 아저씨가 힘들어서 그래.”
“어떻게 그냥 지나가요?”
“이리로…….”
눈짓으로 겨드랑이 밑을 가리킨다. 몸을 숙이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저씨, 신고할 거예요.”
“출동하기 전에 식을 거야. 식으면 안 되잖아…….”
졸라 짜증 나는 아저씨야, 여고생이 인상을 쓰며 겨드랑이 터널 앞에서 몸을 숙인다. 머리가 지나가고 어깨가 통과한다.
“미안해, 학생.”
사과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아저씨 신고할 거예요, 이 말만 남기고 계단 위로 사라진다. 물론 아저씨의 겨드랑이 터널을 지나가는 일이 불쾌한 경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저씨 본인으로서도 자신의 겨드랑이 터널로 누가 지나가는 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왜 그걸 몰라주니? 아직은 세상을 모르는 여고생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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