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3화>
“말로 해선 안 되겠구먼.”
대걸레와 구둣주걱 아저씨가 한 발짝, 계단을 내려온다. 헝, 헝, 헝, 호감을 주기 위해서 억지로 웃는다. 계단에 계속 앉아 있을 생각은 없다. 안방도 아니고, 이런 곳에 계속 앉아 있으면 이 몸도 불편하다. 게다가 대걸레나 구둣주걱 같은 걸 들고 나와서 난리를 부린다. 구정물을 튀기면서 험악한 목소리로 반말까지 한다. 요만큼이라도 승산이 있었다면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쪽은 빈손, 저쪽은 중무장. 머릿수에서도 밀린다.
대걸레와 구둣주걱 아저씨가 다시 한 발짝, 계단을 내려온다. 머릿속에 위험을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온다. 대피하라, 대피하라. 하지만 체력이 아직 바닥이다.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 떼굴떼굴, 계단 저 밑으로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이쪽에서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면, 아주 교양이 없는 사람은 아니네, 의외로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저지대에 있는 사람이 저자세를 취하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죄송…….”
입을 열자마자 말문이 막혀버렸다. 뭔가 번뜩이는 걸 본 느낌이다. 구둣주걱 아저씨 뒤쪽에 아주머니 한 분이 서 있다. 파마한 머리가 동그란 헬멧처럼 견고해 보인다. 턱뼈가 필요 이상으로 발달했다. 끌칼로 깎아놓은 듯 네모반듯하게 각이 진 얼굴이다. 노란색 바탕에 주황색 꽃무늬가 들어간 원피스를 입고 있다. 장바구니만 들면 바로 시장에 가서 장을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아줌마가 들고 있는 물건은 장바구니가 아니다. 저런 걸 들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한다. 번쩍, 예리한 검광이 눈을 찌른다.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이다. 대걸레나 구둣주걱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저런 걸로는 아무리 맞아도 전치 몇 주다. 하지만 식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일 저녁 9시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 신원불명의 남자가 건물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건 현장에 나가 있는 김형우 기자.
“왔네.”
이건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 그런데 감이 멀다. 대걸레나 구둣주걱 아저씨는 아니다. 몇 칸쯤 더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다. 그렇다고 식칼 아줌마일 리도 없다. 목소리의 성별은 분명 남자다.
“변태 아저씨가 너야? 아무튼 잘 왔어.”
며칠 전에 만난 스마일 영감님이다. 세 사람 뒤에 서서 해맑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내가 말했지, 신입회원이 올 거라고. 저 친구야.”
거기 있지 말고 올라와, 영감님을 따라 식칼 아줌마가 철수하고, 구둣주걱 아저씨와 대걸레가 그 뒤를 잇는다. 다시 3층 계단에 혼자 남겨졌다. 역시 119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나? 망설이고 있는데 계단 위에 누가 서 있는 게 보인다.
“아저씨 길 좀 비켜주세요.”
아까 그 여고생이다.
“배달은 잘 했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어도 대답이 없다. 자기 할 말만 되풀이한다.
“늦게 가면 사장 새끼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그런 가게, 그만둬.”
어깨가 넓어 보인다. 힘깨나 쓸 것 같은 어깨다. 자꾸 그 어깨에 기대고픈 마음만 든다.
“5층까지만 데려다 줄래? 아저씨가 힘들어서 그래.”
“자꾸 이러면 진짜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변태 아저씨는 배달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지 말고 5층까지만 배달해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