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9.04 09:50 수정 : 2014.09.05 10:01

강태식 소설 <13화>



“말로 해선 안 되겠구먼.”

대걸레와 구둣주걱 아저씨가 한 발짝, 계단을 내려온다. 헝, 헝, 헝, 호감을 주기 위해서 억지로 웃는다. 계단에 계속 앉아 있을 생각은 없다. 안방도 아니고, 이런 곳에 계속 앉아 있으면 이 몸도 불편하다. 게다가 대걸레나 구둣주걱 같은 걸 들고 나와서 난리를 부린다. 구정물을 튀기면서 험악한 목소리로 반말까지 한다. 요만큼이라도 승산이 있었다면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쪽은 빈손, 저쪽은 중무장. 머릿수에서도 밀린다.

대걸레와 구둣주걱 아저씨가 다시 한 발짝, 계단을 내려온다. 머릿속에 위험을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온다. 대피하라, 대피하라. 하지만 체력이 아직 바닥이다.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 떼굴떼굴, 계단 저 밑으로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이쪽에서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면, 아주 교양이 없는 사람은 아니네, 의외로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저지대에 있는 사람이 저자세를 취하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죄송…….”

입을 열자마자 말문이 막혀버렸다. 뭔가 번뜩이는 걸 본 느낌이다. 구둣주걱 아저씨 뒤쪽에 아주머니 한 분이 서 있다. 파마한 머리가 동그란 헬멧처럼 견고해 보인다. 턱뼈가 필요 이상으로 발달했다. 끌칼로 깎아놓은 듯 네모반듯하게 각이 진 얼굴이다. 노란색 바탕에 주황색 꽃무늬가 들어간 원피스를 입고 있다. 장바구니만 들면 바로 시장에 가서 장을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아줌마가 들고 있는 물건은 장바구니가 아니다. 저런 걸 들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한다. 번쩍, 예리한 검광이 눈을 찌른다.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이다. 대걸레나 구둣주걱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저런 걸로는 아무리 맞아도 전치 몇 주다. 하지만 식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일 저녁 9시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 신원불명의 남자가 건물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건 현장에 나가 있는 김형우 기자.

“왔네.”

이건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 그런데 감이 멀다. 대걸레나 구둣주걱 아저씨는 아니다. 몇 칸쯤 더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다. 그렇다고 식칼 아줌마일 리도 없다. 목소리의 성별은 분명 남자다.

“변태 아저씨가 너야? 아무튼 잘 왔어.”

며칠 전에 만난 스마일 영감님이다. 세 사람 뒤에 서서 해맑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내가 말했지, 신입회원이 올 거라고. 저 친구야.”

거기 있지 말고 올라와, 영감님을 따라 식칼 아줌마가 철수하고, 구둣주걱 아저씨와 대걸레가 그 뒤를 잇는다. 다시 3층 계단에 혼자 남겨졌다. 역시 119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나? 망설이고 있는데 계단 위에 누가 서 있는 게 보인다.

“아저씨 길 좀 비켜주세요.”

아까 그 여고생이다.

“배달은 잘 했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어도 대답이 없다. 자기 할 말만 되풀이한다.

“늦게 가면 사장 새끼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그런 가게, 그만둬.”

어깨가 넓어 보인다. 힘깨나 쓸 것 같은 어깨다. 자꾸 그 어깨에 기대고픈 마음만 든다.

“5층까지만 데려다 줄래? 아저씨가 힘들어서 그래.”

“자꾸 이러면 진짜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변태 아저씨는 배달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지 말고 5층까지만 배달해줘.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강태식의 <가드를 올려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