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4화>
예전에는 동전으로 몸무게를 커버했다. 양쪽 바지 주머니에 동전을 꽉 채우면 대략 2킬로그램. 몸이 날아오르는 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게 날아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언제나 마음이 불안했다. 항상 공중에 얼마쯤 붕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땅에 대한 애착도 생기지 않았다. 뭘 해도 의욕이 없었다. 남들처럼 악착같이 일해서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모든 게 덧없고 허무하기만 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동전이 짤랑댔다. 세상 어디에서도 의미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는 양쪽 발목에 하나씩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하나에 5킬로그램짜리다. 두 개를 합하면 총 10킬로그램이나 된다. 동전을 넣고 다닐 때랑은 무게감부터가 다르다. 걸을 때마다 짤랑대지도 않는다. 바지가 흘러내릴 염려도 없고, 주머니가 터질 걱정도 없다. 안정감에서도 상대가 안 된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뭐랄까……. 땅바닥에 착, 발을 붙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웬만한 바람에는 끄덕도 없다. 날씨가 더우면 선풍기도 튼다.
“뭐야, 그 건방진 표정은?”
마 대리로부터 이런 소리도 들었다. 씨익, 웃어주고 말았다. 동전을 넣고 다닐 때는 느껴보지 못한 자신감이다. 걸을 때도 예전보다 당당해진 것 같다.
“몸이 좋아졌네. 요즘 운동해?”
신선해 씨에게는 헬스장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무튼 고마운 모래주머니다. 모래주머니 덕분에 새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하면 될지도 모른다는 의욕도 생겼다. 얼굴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어둠이 물러가고, 저 산 너머에서 아침이 밝아오는 듯한 요즘이다. 모래주머니 하나로 세상이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나, 깜짝깜짝 놀랄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인생을 바꾸는 건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그런 사소한 것들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리 와서 너도 피자 한 조각 해.”
영감님이 권하길래 나도 한 조각 했다. 냠냠 토핑도 먹고, 첩첩 도우도 씹고, 꿀꺽꿀꺽 물도 한 잔 마신 다음, 식칼 아줌마가 건네준 게 바로 이 모래주머니였다.
“받아라. 가입선물이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다. 저런 걸로 맞으면 한 방에 골로 가겠구나 싶어 덜컥 겁부터 났다. 다행히 가입선물이란다. 그래서 주는 걸 안 받기도 뭐하고 해서 감사합니다, 넙죽 받았다. 보기보다 훨씬 무거웠다. 받자마자 놓치고 말았다. 매트 위에 떨어지면서 텅, 나 같은 일반인쯤은 간단하게 압도해버리는 굉장한 소리를 냈다. 무림고수의 보검인 줄 알고 깜짝 놀랐더랬다.
“발목에 차고 다녀라.”
그러고 보니 묶었다 풀었다 할 수 있는 끈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운동선수들이 사용하는 체력단련용 모래주머니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런 걸 차고 다니면 무릎 관절이 나갈지도 몰라.”
옆에 있던 구둣주걱 아저씨가 불쑥 끼어들었다.
“무릎 관절은 한번 망가지면 복구가 되지 않아. 평생 불구로 살 수밖에 없어.”
여전히 낮고 어두운 공갈협박 톤의 말투다.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모래주머니 같은 걸 차고 다니는 게 아니었어, 후회로 얼룩진 우울한 얼굴이 보였다.
“걷기도 힘들어. 앞에서 차가 달려와도 피할 수가 없어.”
헤드라이트 불빛이 이 몸을 덮친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다. 순식간에 사고가 일어난다. 목이 돌아가고, 팔다리가 부러진 채 길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린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저 이거 안 할래요.”
모래주머니를 슬그머니 식칼 아줌마에게 돌려주었다.
“저자의 말은 신경 쓰지 마라.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다.”
척, 모래주머니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화장터에서 사람 하나 태우는 데 몇 시간이나 걸리는 줄 알아? 금방 탈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아. 두세 시간 이상 걸려. 그래도 뼈가 남지. 가루가 될 때까지 망치로 부숴서 항아리에 담아. 어디다 뿌려줄까? 산이 좋아? 강이 좋아?”
아무래도 저 이런 거 안 할래요.
“당신, 애한테 자꾸 겁주지 마.”
식칼 아줌마의 눈에 희번덕 살기가 돌았다. 이마에도 빠직 핏줄이 잡혔다. 불끈 쥔 핵탄두 주먹 두 방이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살짝, 스위치만 누르면 바로 발사될 것 같았다. 구둣주걱 아저씨를 봤다. 흉악하게 생겼다. 남탕에 몸을 담그고 노래를 불러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건들 사람이 없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의 핵탄두 주먹 한 방이면 남탕의 무적함대 구둣주걱 아저씨도 바로 침몰이다. 화려했던 명성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나와는 만나자마자 이별이다.
“치시게? 나 합의 안 해줄 거야.”
“합의는 필요 없다. 한 방에 보낸다.”
구둣주걱 아저씨가 스위치를 눌러버렸다. 슈퍼맨이 필요했다. 발사된 핵탄두를 우주로 날려버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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