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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11 09:48 수정 : 2014.10.21 10:21

강태식 소설 <15화>



“그만들 둬. 사이좋게 지내.”

슈퍼맨 대신, 눈도 침침하고 거동도 불편해 보이시는 영감님이 스마일, 웃으면서 날아왔다.

“영감님은 가만히 계세요.”

하지만 식칼 아줌마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난 죽 가만히 있었어. 나이가 많이 드니까 가만히 있는 게 편하고 좋아.”

바로 눈을 깔며 약한 소리를 해댄다. 그러더니 너도 가만히 있어, 괜히 옆에 있는 나까지 물고 늘어진다. 가만히 있었는데요, 대답하자, 좀 더 가만히 있어, 야단을 친다. 어른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나 하는 건 정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고, 예리한 지적도 한다. 그래서 좀 더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핵탄두 주먹이 구둣주걱 아저씨를 향해 날아가려 하고 있었다. 전화 부스 문을 열고 두 번째 슈퍼맨이 짜잔, 나타난 건 바로 그때였다.

“폭력은 안 돼요. 아저씨가 죽으면 제가 신고할 거예요. 남자같이 생긴 아줌마가 범인이라고 하면 아줌마는 금방 잡혀요.”

대걸레였다. 순간 핵탄두 주먹의 궤도가 수정되었다. 목표는 두 번째 슈퍼맨 대걸레.

“죽고 싶은가?”

“죽고 싶지 않아요.”

대걸레도 바로 꼬리를 내렸다. 슈퍼맨이 핵탄두를 막고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은 역시 영화였다. 현실의 슈퍼맨은 핵탄두가 날아오면 자기 고향 크립톤 행성으로 몸을 피한다.

“하지만 저를 죽여도 아줌마는 금방 잡혀요. 남자같이 생겼으니까요.”

식칼 아줌마가 남자같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원피스 대신 바지를 입고 파마만 풀면 그냥 공사장 같은 곳에서 험한 일을 하며 거칠게 살아가는 동네 아저씨다. 남자같이 생긴 아줌마가 범인이라고 하면 정말 금방 잡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해서 될 말이 있고 하면 안 될 말이 있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네, 대걸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잡혀도 상관없다. 본좌를 능멸한 죄, 주먹으로 묻겠다.”

식칼 아줌마의 입에서 본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무협지에서 몇 번 본 말이다. 장풍이나 금강장 같은 걸 쓰시려나?

“너는 어느 쪽이냐? 산이 좋겠냐? 강이 좋겠냐? 원하는 곳에 뿌려주마.”

불쑥, 구둣주걱 아저씨가 대걸레에게 물었다. 한 줌 재로 변해 깊은 산속이나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뿌려지는 대걸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는 산이 좋아요.”

대걸레가 정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겁이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양쪽 다 없는 건가?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다.

“용서하지 않겠다. 먼저 덤벼라.”

이렇게 외치면서 자세를 잡는 식칼 아줌마. 예사롭지 않은 동작이었다. 몸 전체가 무기처럼 보였다. 떡 벌어진 어깨, 바위처럼 울퉁불퉁 딱딱해 보이는 팔뚝, 그리고 그 끝에 장착되어 있는 핵탄두급 주먹 두 발. 정타면 사망, 스쳐도 의식불명이다.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마음속으로는 대걸레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부디 좋은 곳에 가서 편안히 쉬렴.

“펑!”

질끈, 저절로 눈이 감겼다. 이제 대걸레는 산에 뿌려지겠구나. 그날 처음 만난 대걸레지만 젊은 나이에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한 발.

“펑!”

피가 튈 줄 알았다. 그런데 피 대신 색종이를 잘라 만든 꽃가루가 날렸다. 뭉게뭉게 보랏빛 연기가 피어오르고, 희미하지만 화약 냄새도 났다. 그건 스마일 영감님이 발사한 폭죽 두 방이었다.

“잘 왔어. 대환영이야.”

어느새 나는 대환영을 받고 있었다. 후 불어서 끌 수 있는 촛불도, 그걸 꽂아놓은 케이크도, 끝이 뾰족한 고깔모자도 없었다. 폭죽 두 방이 다였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의 살기가 그 폭죽 두 방으로 날아가버렸다. 한 줌 재로 산에 뿌려질 뻔한 대걸레도 저기 저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 정말 다행이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박수!”

영감님이 먼저 손뼉을 쳤다.

“언제든 말해. 산이든 강이든 원하는 곳에 뿌려줄게.”

구둣주걱 아저씨도 손뼉을 치며 환영해주었다.

“아저씨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요. 아무튼 환영해요.”

그게 왜 나 때문이냐? 따질 틈도 없이 짝짝짝 손뼉을 치는 대걸레의 환영을 받고 말았다.

“이거 차고 다녀라.”

식칼 아줌마가 모래주머니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냉큼 받았다.

“잘 왔다.”

식칼 아줌마의 박수 소리가 제일 우렁찼다. 빵빵빵! 저 손바닥에 따귀라도 한 대 맞으면……. 등골이 오싹했다. 환영을 받으면서도 역시 무서운 아줌마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식칼 아줌마에게서 받은 가입선물이 이 모래주머니다. 구둣주걱 아저씨의 말처럼 무릎 관절이 나갈지도 모른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능만큼은 확실했다. 두 발이 착, 땅바닥에 붙는다. 태풍만 아니면 바람에도 끄떡없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 식칼 아줌마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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