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6화>
그날 난 자기소개도 했다.
“신입이잖아. 당연히 해야지.”
스마일 영감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 이름과 나이를 댔다. 사는 곳도 말했다.
“그게 다야?”
다른 것들도 소개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음악 감상과 독서가 취미라고 거짓말을 했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런 거 말고.”
가족사항을 읊으려는데 스마일 영감님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어떻게 붕이 된 거야?”
그걸 알면 여기 와서 이 고생을 하지도 않았다.
“그럼 언제부터 붕이 된 거예요?”
이번에는 대걸레에게 질문을 받았다.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한 모임에 참석한 것 같았다. 어떻게 중독이 된 거야? 언제부터 중독이 된 거예요? 어떻게 붕이 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는 알 것 같다.
“이야기가 긴데.”
“시간은 많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백수생활을 거쳤다. 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셨다. 방구석에 처박혀 어머니의 한숨을 호흡하며 살았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한숨을 쉬지 않으셨다. 하나뿐인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나를 외면하셨다.
그러다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취직했다. 대우도 파격적이었다. 입사하자마자 대리 직급을 달았다. 집에서 너무 먼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그래서 전철로 10분 거리에 있는 지금의 반지하로 이사했다. 붕이 된 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3개월쯤 지난 어느 날의 일이었다.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옷을 벗자마자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쟀다. 동그란 계기판에 바늘이 달려 있는 아날로그식 체중계였다.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0킬로그램을 가리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체중계가 고장 났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다섯 살이나 됐을까? 내 다음 타자로 미취학 아동이 올라가 몸무게를 쟀다. 25킬로그램. 체중계는 말짱했다. 처음에는 그냥 이상하네, 생각하고 말았다. 다시 올라가 몸무게를 쟀다. 이번에도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발이 살짝 공중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옷을 입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체중계도 하나 샀다. 문을 잠그고 옷을 벗었다. 그리고 몸무게를 쟀다. 0킬로그램. 그때 알았다. 내가 붕이 되었다는 사실을.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
계속 질문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구둣주걱 아저씨였다. 아무리 자기소개라도 그건 말 못 해, 입을 꾹 다물고 구둣주걱 아저씨의 시선을 외면했다.
“좋게 말로 할 때 불어.”
바로 구둣주걱 아저씨의 공갈협박이 날아들었다. 살짝 입이 열리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무리 구둣주걱 아저씨가 공갈협박을 해도 그건 말 못 해, 결의를 다졌다.
“그럼 못써. 사람이 떳떳하게 살아야지. 지금 불면 신고는 안 해.”
계속되는 구둣주걱 아저씨의 공갈협박. 떳떳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신고당할 일도 하지 않았다.
“저 아줌마한테 때리라고 할까?”
이번에는 식칼 아줌마까지 끌어들였다. 힐끗, 식칼 아줌마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바로 입이 열렸다.
“바이브레이터 취급 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화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거예요.”
대걸레가 용기를 주었다. 맞는 말이다. 한때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면 그렇지 않은 직업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