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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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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소설 <17화>
“항문질환은 없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추 부장이었다. 아무리 면접이라지만 보자마자 반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당황하게 만든 건 질문의 내용이었다. 학력이나 경력을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다. 시사와 관련된 질문이나 입사 이후의 포부를 묻는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당황했다. 하지만 면접이었다. 일단은 없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했다.
“항문질환으로 고생한 적도 없고?”
사무직이라면 아무래도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그러니까 항문질환은 사무직의 적,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항문질환은 재발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물어보는 게 아닐까?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스펙보다는 업무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 같았다. 여기서 일하고 싶다, 이분에게 인정받고 싶다, 생각하며 이번에도 큰 소리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항문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럼 합격!”
빵빠라밤! 팡파르가 울렸다. 다음 날부터 바로 업무에 투입되었다.
회사 이름은 MC였다. 왜 MC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여러 가지 설들만 난무할 뿐이다. 우선 대표이사의 이름에서 이니셜을 따왔을 거라는 설. 대표이사의 이름이 김민철이니까 MC는 맞다. 하지만 여성용 자위기구인 바이브레이터를 취급하는 업체다. 아무리 이니셜이지만 그런 업체에 자기 이름을 내걸 정도면 얼굴 두께가 보통은 넘어야 한다. 아니면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거나. 하지만 우리 회사 대표이사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사무실에 얼굴을 내미는 일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두 단어로 된 영어의 약자가 아닐까? MC에서 C는 당연히 ‘컴퍼니’, 회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M이다. ‘마징가 컴퍼니’. 마징가 회사라는 건데, 왜 마징가냐? 의견을 낸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도 추 부장은 마징가니까 마징가지, 무책임한 대답만 한다. ‘메트로폴리탄 컴퍼니’. 이건 용 과장의 생각이다. 이런 회사에 메트로폴리탄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 있는 인간이 전 세계에 몇이나 될까? ‘매조 컴퍼니’ 아니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사무실에 신선해 씨밖에 없다. 모두 뭐랄까……, M으로 시작하는 건 맞는데 입에 짝 달라붙는 맛이 없다.
이에 비해 마 대리의 말에는 탁,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설득력이 있었다. ‘마스터베이션 컴퍼니’. 그러니까 자위회사다. 자위용품을 취급하는 업체니까 자위회사. 듣는 순간 아, 하고 수긍해버렸다.
“자위회사면 어떠냐?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식칼 아줌마처럼 따진다면 할 말이 없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국민들이 실업난이라는 진창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시대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일상처럼 돼버린 나라다. 자위회사지만 회사에 다닌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안분지족의 자세를 견지하며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출근 첫날, 용 과장의 호출을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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