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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17 10:17 수정 : 2014.10.21 10:21

강태식 소설 <19화>



바지를 내리고 둥글게 몸을 말았다. 손에는 바이브레이터가 꼬옥, 쥐어져 있었다. 시험 삼아 작동 스위치를 눌러보았다. 위-잉, 소리를 내며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이처럼 생긴 바이브레이터도 빙글빙글 몸을 돌렸다. 많이 아플 것 같았다. 몸속에서 이런 게 돌아가면 난 망가져버릴지도 몰라, 생각할수록 겁이 났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마지막 순간이 제일 힘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먹고살아야 하나? 바이브레이터를 항문에 조준하면서 인간적인 고뇌에 몸부림쳤다. 그냥은 들어가지 않았다. 부엌에 있는 식용유를 가져와 윤활유 대신 발랐다. 멀리 팔려가는 기분이었다. 바이브레이터를 다시 항문에 댔다. 뺨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길고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너무 힘들고 아팠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못 할 게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바이브레이터를 몸속에 삽입할 수 있었다. 쏘옥!

“많이 아팠겠다.”

대걸레의 생각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업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통을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러워서 못 들어주겠네.”

구둣주걱 아저씨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일이었다. 더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감정도 버렸다.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해나갔다.

단계를 높일수록 회전이 빨라졌다. 그때그때의 느낌을 보고서에 기록했다. 제품에 따른 특성도 있었다. 장점과 단점을 놓치지 않고 체크했다. 그리고 밤 10시쯤 일을 끝마쳤다.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옷을 챙겨 입고 나가 소주 두 병을 사왔다. 안주도 없이 강소주를 마셨다. 인생이 어떤 맛인지 알 것 같았다. 나에게 인생이란 안주 없이 마시는 강소주처럼 쓰디쓰기만 했다.

“지금도 그 일 계속해?”

스마일 영감님에게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계속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져버렸다. 일이 몸에 익자 능률도 오르고 시간도 단축되었다. 한 달에 두세 번꼴이라 몸을 혹사시킬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항문건강은 꼬박꼬박 챙겼다. 건강한 괄약근은 내가 가진 최대의 무기였다. 그게 고장 나면 바로 모가지가 달아나버릴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소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 위생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큰 맘 먹고 비데를 구입했다. 그러면서 규칙적인 운동을 병행해나갔다. 규칙적인 운동이라고 해봐야 항문 스트레칭 정도였다. 하지만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근육을 조이는 데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육식보다는 채식이 좋대.”

마 대리와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술이 제일 안 좋은 건데…….”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잔을 비운 적도 있었다.

“생각보다 견딜 만했어요.”

몸은 그랬다. 어떻게든 관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마음은 관리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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