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20화>
생체실험을 하고, 서류작성까지 마치고 나면 안주도 없이 강소주 두 병,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어버렸다. 하루는 참아본 적도 있었다. 말짱한 정신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말똥말똥 눈을 뜨고 두 시간 넘게 누워 있었다. 계속 자책만 했던 것 같다. 먹고사는 게 부끄러웠다. 건강한 괄약근이 최대의 무기라는 것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갑자기 한강에 가고 싶었다. 집에 쓸 만한 밧줄이 없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자꾸 약한 마음만 들었다. 그래서 몸을 일으켰다. 한강에는 가지 않았다. 밧줄을 찾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대신 슈퍼에 가서 소주 두 병을 사왔다. 급하게 마셨다. 빨리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깊게 파인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소주 두 병을 더 사왔다. 술잔 같은 건 사용하지 않았다. 병을 손에 들고 통째로 불었다. 내 몸이 불쌍했다. 생체실험용 교보재가 돼버린 내 몸이 불쌍해서 계속 눈물만 흘렸다.
“남자가, 울지 마라.”
꽃무늬가 들어간 손수건이었다.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도 났다. 식칼 아줌마가 이런 걸 갖고 다닐 줄 몰랐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고맙게 받았다. 그걸로 두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냈다.
“그러다 붕이 된 거 아니에요?”
그런 생각도 해봤다. 바이브레이터 같은 걸 넣고 돌리니까 몸이 고장 나버린 거라고. 심증은 있었다. 하지만 물증이 없었다. 그래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마 대리를 꼬셨다.
“몸이 뻐근하네. 사우나 같이 갈래?”
퇴근하고 회사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들어가 나란히 옷을 벗었다. 몸을 화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갔다. 배가 나왔다는 말로 도발도 하고, 근육이 단단하다는 감언이설로 회유도 했다. 그렇게 분위기를 만든 다음 몸무게 이야기를 꺼냈다.
“몇 키로나 나가?”
“목욕탕은 몇 년 만에 처음이라 기억이 안 나.”
“잘 됐네. 그럼 달아봐. 몇 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이대로 놓칠 거야?”
마 대리의 계체량 현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계기판의 숫자가 숨 가쁘게 치솟았다. 나보다 키도 작은 주제에 90킬로그램이나 나갔다. 갑자기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었다.
“좀 쪘네.”
마 대리가 배부른 소리를 했다. 소중한 몸무게를 함부로 취급하지 마! 불공평한 세상에 화가 나기도 했다.
온탕에 몸을 담갔다. 눈시울만 뜨거워졌다. 냉탕에도 들어갔다. 세상이라는 곳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건식 사우나에 앉아 땀을 뺄 때는 왠지 사막 한가운데 혼자만 버려진 느낌이었다. 습식 사우나에서도 울적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다. 자꾸 나가자고 졸라대는 마 대리를 보면서 원망도 했다. 어째서 네놈은 9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거냐?
그래서 알게 되었다.
“바이브레이터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생체실험을 당하는 동안 망가져가는 자아를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복구할 수 없는 고장이었다. 자괴감에 시달리면서 매일 밤, 잠을 설쳤다. 몸속에 바이브레이터를 넣고 돌릴 때면 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매번 절망감에 빠져 몸부림쳤다. 그러다 나는 남자가 아닐지도 몰라, 성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했다. 점점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어졌다. 한번은 친구들이 불러서 나간 적도 있었다. 고개 한번 들지 못하고 내내 술만 마셨다. 요즘 힘든 일 있냐? 한 친구가 물었다. 울컥했다. 말 못 할 비밀 때문에 힘들었다. 먹고사는 게 부끄러워서 힘들었다. 왈칵, 눈물이 복받쳤다.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했다. 그리고 친구들 몰래 자리를 빠져나왔다. 뚜벅뚜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모임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도 일이 있을 때만 잠깐 갔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자꾸 숨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들도 피해 다니게 되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마쳤다.
잘 왔어. 환영해. 환영한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얼떨결에 뜨거운 박수까지 받았다.
계단을 오를 때는 괜히 와서 고생이라고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낼 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오길 잘했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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