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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19 09:47 수정 : 2014.10.21 10:21

강태식 소설 <21화>


4.

직장생활이 힘든 건 사람 때문이다. 일은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사람을 괴롭히는 건 사람뿐이다. 자위회사에 몸담은 지도 어언 3년, 자아가 허물어져 내리는 것을 느낀다.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보람 같은 건 없다. 뚝심 하나로 버텨야 하는 현실뿐이다.

“점심시간 전에 끝내놔.”

추 부장이 지나가면서 쿡, 옆구리를 찌른다. 면접 날 이분에게 인정받고 싶다, 생각했던 바로 그 분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분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추 부장이 인정하는 건 자기 자신뿐이다.

“못 넘기면 각오해. 배에다 찹쌀을 채워서 푹 삶아버릴 테니까.”

말을 해도 이렇게 꼭 원색적인 말만 골라서 한다. 눈알을 뽑아서 알사탕처럼 깨물어 먹겠다는 둥, 빨대를 꽂아서 골수를 빨아먹겠다는 둥, 이런 말들을 일상 언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들을 상상하게 된다. 으악! 비명을 지를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추 부장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출생지를 밝히지 않는다. 생긴 것부터가 이 나라 사람 같지 않다. 일단 머리가 너무 크다. 부리부리한 눈, 짙은 쌍꺼풀 때문에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 주먹만 한 매부리코, 그 밑에 입술은 칼로 썰면 한 접시 가득이다. 사실 부모가 식인종이다. 외항선 같은 걸 타고 한국에 숨어들었다.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힘들게 살았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그 사랑이 이 땅에서 결실을 맺었다. 아이는 자라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다. 지금은 여성용 자위기구를 취급하는 자위회사에 다닌다. 직급은, 장하고 대견하다! 사무실의 서열 1위 부장이다……. 추 부장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이런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식인 본능 때문에 어린아이나 젊은 여자들의 연한 고기를 찾아 어두운 밤거리를 배회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의 추 부장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래서 식인종. 이건 직원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추 부장의 닉네임이다.

하지만 내 눈알은 아직 양쪽 다 건재하다. 골수에 빨대가 꽂히는 걸 경험해본 적도 없다. 어쩌면 경찰이 무서워서 행동을 자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말뿐이다. 그래서 모두들 추 부장의 말이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맥박이 빨라지거나 호흡이 가빠지거나 식은땀을 흘리면서 가끔 현기증까지 느끼는 인간은 사무실에서 이 몸 혼자뿐이다.

“삼계탕보다는 숯불 바비큐가 낫겠다. 배에다 찹쌀을 채우는 건 취소. 대신 양념장을 발라줄게.”

삼계탕이든 숯불 바비큐든 식재료가 되는 건 사양하고 싶다. 두 팔로 소중한 몸을 감싸 안는다. 내줄까 보냐, 두 주먹 불끈 쥐고 결심해본다. 말뿐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기 위해 노력한 적도 있다. 하지만 좌절만 맛봤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안 되는 걸까? 스트레스 때문에 한 움큼, 머리만 빠졌다.

“누가 식인종 아니랄까 봐 끼니때만 되면 지랄이야.”

사무실의 홍일점 신선해 씨다. 목소리는 작지만, 할 말은 하고 사는 당찬 여자다. 공이 날아오면 되받아친다, 신선해 씨의 인생철학 같다. 의리도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화끈한 성격이다. 한번은 식인성 발언을 삼가달라며 추 부장을 상대로 일인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의리가 없는 마 대리는 그때도 바쁜 척 연기에 몰입했고, 불의를 봐도 비교적 잘 참는 나는 속으로만 신선해 씨를 응원했다. 비록 출생의 비밀이 있는지 나이를 밝히지 않지만 당당한 그 모습만큼은 언제나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침없이 척척 제 갈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마 대리 너도 마찬가지야. 점심시간 넘기면 양념장 발라버릴 거야.”

앞에서는 못 들은 척하는 게 마 대리의 스타일이다. 대신 없을 때 뒷담화를 깐다. 이 새끼 저 새끼 쌍욕을 해대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비겁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나름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방법은 다르지만, 신선해 씨는 신선해 씨대로, 마 대리는 마 대리대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건드리면 무는 것도 생존전략이지만, 건들면 죽은 척하는 것도 생존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트랙 위에 놓여 있는 허들을 차례차례 뛰어넘으며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만 그런 생존전략이 없다. 혼자 뒤처진 채 진흙탕 행군을 강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허들이 다가오면 반드시 걸려 넘어진다. 이래서는 좀처럼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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