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24화>
수수께끼에 쌓인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스마일 영감님이다. 언제 봐도 웃는 얼굴이다. 사연이 있는 얼굴 같은데 아직은 밝혀내지 못했다. 인내심을 갖고 파헤칠 생각이다. 지금은 하는 일 없이 인생을 허비하는 모습만 관찰될 뿐이다. 인생의 연륜 전부를 빈둥대는 일에 사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서 와.”
오면 반겨주고,
“조심해서 가.”
갈 때 웃으면서 보내주는 게 전부다.
“당신들 누구야?”
가끔은 이렇게 정신이 나간 듯한 소리를 해대면서 듣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붕들에게 미치는 영감님의 영향력은 정말 대단하다. 스마일, 웃는 얼굴 하나로 아지트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다. 말다툼이 벌어져도 영감님이 끼면 언제나 스마일이다. 고민이 있는 붕들이 영감님에게 달려간다. 내실로 들어가서 잠깐 영감님과 시간을 보내고 나온다. 들어갈 때는 울상이지만 나올 때는 어느새 스마일이다. 내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냄새가 풍겼다. 그래서 나도 한번 들어가본 적이 있다.
냄새만 풍겼지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맞은편에 앉은 영감님이 평소처럼 스마일, 웃고 있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어쩌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일지도 몰라, 허황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고민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고민해도 좋아. 하지만 그런 일은 없잖아.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웃어.”
그럼 고민할 필요 없는 거네, 설득당하고 말았다. 영감님과 함께 내실에서 나오는 내 얼굴에도 어느새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처럼 활짝, 스마일 마크가 찍혀 있었다. 이게 영감님의 마력이다. 웃는 얼굴 하나로 붕들을 지배한다. 식칼 아줌마처럼 무력을 사용하지도, 구둣주걱 아저씨처럼 공갈협박을 무기 삼아 사람을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냥 스마일, 웃으면서 손을 내밀 뿐이다.
“일으켜줄게. 같이 가자.”
그런 느낌이다. 손이 무척 따뜻해 보인다. 잡지 않을 수 없다. 이 손을 잡으면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감님과 함께라면 훌쩍, 어디로든 가고 싶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영감님을 중심으로 붕들이 모여들었다. 이 아지트의 주인장도 스마일 영감님이다. 온종일 아래위가 한 세트인 녹색 체육복을 입고 아지트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 매트 위에 누워 있으면 같은 녹색이라 구분이 안 된다.
“밟지 마.”
처음에는 매트가 말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스마일, 웃고 있는 영감님이었다. 한번은 매트가 뭉그적거리며 일어나 앉는 바람에 엄마야, 비명을 지른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도 스마일 영감님이었다. 아무튼 베일에 싸인 것처럼 신비한 인물이다.
이렇게 붕들의 모습을 꾸준히 관찰하면서, 얼마 전부터는 개인면담도 겸하고 있다. 소극적인 관찰로는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다는 자기반성 때문이었다. 먼저 대걸레를 공략했다. 나이가 어려서 상대하기 편했다. 만만해 보인다는 장점도 있었다. 아무튼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표본 같았다.
너는 어쩌다 붕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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