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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25 10:25 수정 : 2014.10.21 10:19

강태식 소설 <25화>



대걸레는 현직 외판원이다. 주로 문학 전집 같은 도서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발품만 팔고 돌아다니지 실적은 없어요.”

경기침체에 따른 여파가 컸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세상이다. 가계경제가 위축될수록 문화비 지출은 줄어든다. 옷은, 안 입을 수 없다. 밥은,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은, 안 읽어도 된다. 굶어 죽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출판시장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옛날처럼 장식용으로 한 질씩 구입하는 사람들도 없어요.”

그래서 힘들게 발품을 팔고 돌아다녀도 헛걸음만 하게 된다. 더우면 더워서 고생이고, 추우면 추워서 고생이다.

“외판원이라는 게 원래 힘든 직업이죠.”

발에 물집이 잡힌다.

“그래서 요즘은 여성 생리용품을 밑창에 깔고 다녀요.”

문전박대를 당하는 건 일상다반사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실적이 거의 없는 거라고 대걸레는 말한다.

“성과급이거든요.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돈이 안 나와요.”

게다가 한 달에 한 질 이상은 의무적으로 팔아야 한다.

“외판원의 3대 의무 중 하나죠.”

누가 정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키지 않으면 목이 날아간다.

“그래서 실적이 없는 달이면 자비로 책을 구입하고 있어요.”

대걸레는 주로 세계문학 전집을 컬렉션하고 있다.

“많은데 한 질 드려요?”

“나는 됐어.”

세계문학 전집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왠지 모르게 대하기 어렵고 부담스럽다.

“많으니까 한 질 가져가세요. 집이 좁아서 놔둘 데도 없어요.”

대걸레가 투덜거린다. 몇 번은 눈 딱 감고 파격 대처분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버리지 마, 그건 내 양식이야, 마음에 걸려서 그러지 못했다. 지금은 그 책들이 차곡차곡 안방에 쌓여 있다. 방이 하나뿐인데 다리를 뻗고 누울 자리도 없다. 아무리 높이 쌓아 올려도 좀처럼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부엌에서 자요.”

대걸레 너도 참 힘들게 산다,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들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새로운 타입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왠지 건널 수 없는 큰 강 같은 게 도도히 흐르고 있는 느낌이다. 강 저쪽에는 일반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강 이쪽에는 세계문학 전집에 밀려나 부엌 바닥에 뿌리를 내린 대걸레가 있다. 팡! 팡! 샌드백을 두드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식칼 아줌마도 그중 한 명이다. 녹색 매트리스와 한 몸이 되어 어딘가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스마일 영감님도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구둣주걱 아저씨도 빼놓을 수 없는 멤버다. 나 역시 강을 건너 이쪽 세계로 와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된 원인을 파헤치고 있는 중이다.

“저는 거짓말을 못 해요.”

그게 뭐?

“그래서 붕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들어서는 알 수가 없다. 좀 더 들어봐야 무슨 소린지 알 것 같다.

“거짓말을 하면 바로 토하거든요.”

체한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거짓말만 하면 웩, 먹은 게 몽땅 역류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한번 대걸레 너도 참 힘들게 산다, 생각했다.

“혹시 트라우마라고 아세요?”

트라우마라면 알고 있다.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외상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나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 따위가 원인이 되어 외상과 관계없이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체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그게 저한테 있어요.”

누구나 그렇듯 대걸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백지처럼 깨끗한 상태라 뭘 써넣든 뚜렷하게 흔적이 남는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평생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걸레의 고백에 따르면 자기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란다.

어린 시절 대걸레 소년이 처음 접한 동화책은 《양치기 소년》이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손에 땀을 쥐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대걸레 소년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금방 감정이 이입됐어요. 어쩌면 양치기 소년이랑 나이가 비슷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저는 어느새 양을 치고 있었어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이 있고, 파란 하늘에 새털 같은 구름이 흘러가고……. 가끔 산새가 지저귀기도 했어요. 무척 평화로웠죠.”

하지만 심심했다. 그래서 늑대가 나타났다, 거짓말을 했다. 삽이나 몽둥이 같은 걸 들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그러면 양치기 소년은 또 거짓말을 했다. 소리를 지르니까 달아났어요.

“이 이야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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