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26화>
나도 어렸을 때 읽은 기억이 있다. 텔레비전 만화로도 몇 번 봤다. 그때마다 거짓말하면 나쁜 어린이가 되는데,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걸레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늑대가 나타났다, 소리만 지르면 사람들이 몰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몇 번 더 했다. 몇 번 더 해도 질리지 않았다. 하지만 끝이 안 좋았다.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는 늑대가 나타났다, 아무리 소리 질러도 반응이 없었다.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 죽을힘을 다해 외쳤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교훈이 담겨 있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대걸레 소년의 생각은 좀 달랐다.
“거짓말과 참말도 구별 못 하는 마을 사람들이 나빠요.”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강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양치기 소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양치기 소년을 따라 해보았다. 물론 양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대신 대걸레 소년은 개를 치거나 고양이를 쳤다. 개나 고양이가 없으면 자기보다 어린 동네 꼬마들을 치면서 양치기 소년의 기분을 음미해보았다. 책에 나온 대로였다. 역시 심심했다. 계속 하품을 하면서 눈물을 닦았다.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양치기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늑대가 나타났다!”
하지만 현실 속의 늑대는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동물이었다. 입장료를 내고 동물원에 들어가지 않으면 관람 자체가 불가능했다.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대걸레 소년은 뭘 치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심심해지면, 하품을 하다가 눈물이 나면, 그때마다 소리쳤다.
“늑대가 나타났다!”
그날도 대걸레 소년은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주워 모아 양 대신 그걸 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굉장히 심심했다. 하품만 쩍쩍 나왔다. 눈도 스르르 감겼다. 뭘 치는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린 대걸레 소년은 회의에 빠져서 이런 생각도 했다. 바로 그 때였다.
으르렁으르렁!
소리는 등 뒤에서 들려왔다. 개가 왔나? 생각하면서 대걸레 소년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건 개가 아니었다. 개보다 덩치가 훨씬 컸다. 가시처럼 억세고 뾰족한 갈색 털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눈빛도 사나웠다. 한 발 두 발 대걸레 소년을 노려보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무시무시하고 잔인하게 생긴 진짜 늑대였다. 배가 고파 보였다. 끈적끈적한 침이 대못처럼 박혀 있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대걸레 소년은 질끈 눈을 감았다. 몸을 날린 늑대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채 대걸레 소년을 덮치고 있었다.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눈앞이 노랗게 변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있는 힘껏 늑대를 밀어냈다. 하지만 완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 두 개가 대걸레 소년의 목에 박혔다. 엄청난 양의 피가 바닥으로 흘러내려 고였다. 그르렁그르렁, 기도에서도 피가 끓어올랐다.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늑대의 이빨이 대걸레 소년의 뱃가죽을 찢었다. 부러진 갈비뼈도 보였다. 두 대의 갈비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늑대가 내장을 물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비릿한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모락모락 아지랑이 같은 김도 피어올랐다. 늑대는 곧 대걸레 소년의 내장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빨 사이에서 미끄러진 내장이 몇 번인가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늑대는 상관하지 않았다. 다시 주워 물었다. 그리고 계속 씹어 먹었다. 바닥에는 대걸레 소년의 피와 늑대가 흘린 침이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으악!”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늑대도, 살을 뚫고 튀어나온 갈비뼈 두 대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내장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좀 전까지 치고 있던 돌멩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햇빛에 달궈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울컥하고 갑자기 속이 뒤집혔다. 그 자리에서 대걸레 소년은 웩, 먹은 걸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
“그럼 그게 꿈이었다는 거네.”
“늑대가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주택가에 나타날 리 없잖아요.”
꿈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게 대걸레 소년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거짓말만 하면 늑대가 나타났다. 부러진 갈비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왔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내장이 배 밖으로 흘러내렸다. 바로 속이 뒤집혔다. 먹은 걸 다 토해낼 때까지 구토를 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직하게 살면 좋은 거 아닌가?”
“하지만 세상이 정직하지 못한 걸요.”
하긴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하지만 정직하게 살면 손해만 본다. 융통성이 없는 인간이라고, 이마에 쾅 낙인이 찍힌다. 사회생활 하나 제대로 못 해?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진다. 그렇게 계속 두들겨 맞으면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버틸 재간이 없다. 결국 만신창이가 되어 세상이라는 이름의 링 위에 쭉 뻗어버리고 만다. 세상이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 이 세상은 정직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요한 게 페인트 모션이다. 이쪽저쪽으로 상체를 흔들면서 상대를 속일 줄 알아야 한다. 가급적이면 주먹을 많이 날리는 게 좋다. 어깨에 힘을 빼고 주먹을 뻗어보자. 정타가 들어가지 않아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열에 아홉은 공갈주먹이다, 그런 느낌으로 주먹을 날리면 된다. 공갈주먹으로 상대를 교란시킨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정타 한 방이 들어간다. 정타의 파괴력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정타보다 공갈주먹이 중요하다. 여기를 칠 것처럼 하다가 저기를 노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기술이다. 결국 상대를 속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인생이라는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필살기라 하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필살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곧이곧대로 믿거나 있는 그대로 말하면서 살다 보면 어느새 녹다운을 당하고 만다. 링 바닥에 누워서 경기장 위에 매달린 조명을 응시하며 레퍼리의 카운트가 끝나기를 비참한 심정으로 기다리게 된다. 여기에 있는 대걸레도 그런 선수들 중 한 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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