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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30 09:58 수정 : 2014.10.21 10:20

강태식 소설 <28화>



“외로웠겠다?”

“외로웠어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지만, 보이지 않는 쇠창살 속에 혼자만 격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대걸레는 고독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노라고 대걸레는 촉촉한 목소리로 그때를 회상한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동안 성격마저 어둡고 침침하게 변해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붕으로 거듭난 거죠.”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반으로 줄었다. 처음에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볍게 넘길 수는 없었다. 혹시 병인가?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병원을 찾았다. 진찰을 하고 종합검진도 받았다.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일시적인 현상 같았다. 잘 먹고 관리만 잘해주면 다시 예전 몸무게를 회복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여전했다. 독방생활이 계속되었다. 눈을 마주 보며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의 싸늘한 표정이 무서웠고, 자기를 피해 다니는 동료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외로움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대걸레는 혼잣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화장실이나 옥상, 비상계단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중에는 직원 휴게실에서도,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

중얼중얼, 중얼중얼…….

속에 담겨 있던 말들이 그냥 줄줄 저절로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현실의 대걸레가 가상의 대걸레를 상대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했다. 통제가 되지 않았다. 혼잣말을 하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깜짝깜짝 놀랄 때도 많았다.

“대화할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대걸레는 일약 사내 기피대상 1호가 되어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귀신이 붙었다느니, 신 내림을 받았다느니, 이런 소문까지 퍼졌다.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게 사내의 여론이었다.

“제발 중얼중얼, 혼잣말 좀 하지 마!”

참다못한 아무개 과장이 총대를 멨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용기를 짜내 따끔한 경고의 일침을 날렸다. 그런데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귀가한 아무개 과장이 자기 집 화장실에서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대걸레도 마음이 아팠다. 문상을 가서 부조금도 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대걸레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중얼중얼, 대걸레가 혼잣말을 하면서 나타나면 모두 도망치기 바빴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사원 몇은 간혹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다 사표를 쓰고 회사를 그만두는 여사원들도 몇 있었다.

대걸레도 그런 자신이 싫었다. 혼잣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입에 마우스피스를 물고 그 위에 마스크를 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외로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어느새 마스크 너머로 중얼중얼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또 한 달이 흘렀다. 몸무게를 쟀다. 다시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몸무게는 처음의 4분의 1, 그러니까 반의 반 토막이었다.

그래도 대걸레는 사회성 없는 인간이라는 낙인을 쾅 이마에 찍은 채, 사내 기피대상 1호라는 푯말을 척 가슴에 두른 채, 출퇴근을 계속했다. 중얼중얼. 대걸레의 혼잣말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그러는 사이에 날이 흐르고, 달이 넘어갔다.

회사 사람들도 대걸레라는 존재와, 중얼중얼 저주처럼 들려오는 불길한 혼잣말에 적응하게 되었다. 의식 저편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대걸레를 피해 다니지 않았다. 중얼중얼, 음산하게 들려오는 혼잣말에 울음을 터트리는 여직원도 없었다. 대걸레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때로는 발을 밟히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미안합니다,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다 그냥 가버렸다. 몇 번 그랬다. 그때마다 대걸레는 그러려니 했다. 한번은 자동문에 부딪힌 적도 있었다. 그때도 대걸레는 기계가 고장 났나? 생각했다. 대걸레가 안에 있는데도 화장실 불이 꺼지거나, 사무실 문이 잠길 때는 좀 당황했다. 물론 화장실이 꼭 환할 필요는 없었다. 좀 불편했지만 끝까지 볼일을 보고 나왔다. 하지만 사무실 문이 밖에서 잠기는 건 문제가 좀 달랐다. 그날 대걸레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밤을 보냈다. 전원을 내리고 갔는지 스위치를 올려도 조명은 들어오지 않았다. 캄캄했다. 중얼중얼, 대걸레는 혼잣말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어쩌면 유령인지도 몰라. 이미 죽었다. 이미 죽었지만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유령이 된 뒤에도 살아 있을 때 다니던 회사에 착실히 출근한다. 근무 시간에는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짬짬이 화장실이나 휴게실 같은 곳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면 책상을 정리하면서 일과를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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